삼류 만화 패밀리, 3CF를 추억하며

내가 처음 그를 접한 곳은 넷츠고 네오동이었다. 그당시 yongman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그는 욕을 많이 해서 욕많이라고 이름을 지었나 싶었을 정도로, 정말 지독한 욕쟁이였다. 허구헌날 하는 일이라곤 같은 반 애들 놀리고 괴롭히고 헐뜯는 낙서에 불과한 것을, 좋다고 스캔해서 올리고 욕먹고 그래도 또 올리고 그럼 또 다구리당하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인터넷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3CF의 홈페이지를 열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마음 맞는 몇명끼리 반은 장난으로 만든 것 같았는데, 다들 모여서는 하는 짓거리가 참 낙서라고 해도 봐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의 만화들을 삼류만화랍시고 인터넷에 올리고 놀았다. 당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수히 욕을 얻어먹었고 그래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배쨌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생각없는 고삐리에 불과하지는 않았다. 그림이 개같고 내용이 개같아도, 그 재미 만큼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차츰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시작하더니 나중 가서는 꽤 큰 세력이 되었다. 마침 인터넷에서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teamcscw.com에서 이들에게 손을 뻗어, 어지간한 수준의 웹호스팅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3CF의 전성기는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까의 yongman은 어느새 보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순히 얼굴이 그리기 귀찮아서 보노보노의 얼굴을 가져다 붙이면서 이런 이름이 붙기 시작했는데, 본인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보노라고 불렸다.

하여간에 구질구질한 무료계정에서 벋어나 어지간한 유료계정 수준의 호스팅을 받게 된 3CF는, 기세를 몰아 그야말로 맘껏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노는 태평성세를 누린다. 특히 자유게시판이 유명했는데, 불만이 잔뜩 쌓인 갈 곳 없는 중고생들이 모여서 끊임없이 잡담을 주고받는 사람냄새 나는 곳이었다. 너무나 활발하게 움직여서 그 활동성은 디씨인사이드의 엽기게시판을 연상케 할 수준이었다.

초반에 오프라인에서만 활동하던 3CF도 이제는 온라인 멤버를 모집하게 되고 멤버가 교체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다들 그림을 잘 그리는데는 별 관심없이 그저 자기네들끼리 킥킥거리고 재밌으면 그만인지라, 아무런 부담없이 삼류만화를 그리며 인터넷에 스캔해서 올리고 리플달리고 싸우고 편들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부대끼고 하면서 무시무시한 수준의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커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문제는 호스팅을 받는 teamcscw 쪽에 있었다. 3CF가 좋아서 호스팅을 제공해주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거대해질줄은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정식이 아니라 깍두기 정도로 자투리 공간을 준 정도에 불과했는데, teamcscw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며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서 안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하루 5G의 트래픽 제한을 걸었는데, 이거 때문에 하루 중 반 이상이 불통 될 정도였다. 주말 같은 경우는 단 몇시간, 그것도 자정을 넘어서 트래픽 제한이 풀리는 그 늦은 시간부터 단 몇시간만 되고 다시 닫힐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회원제도 해봤고 하루의 글 갯수 제한도 해봤지만 트래픽 문제는 해결될 줄을 몰랐다.

그것도 3CF 사람들이 착하기만 했으면 몰라. 그 거칠고 거칠은 중고생들이 매일같이 쌓이는 불만을 애꿎은 teamcscw쪽에다 쏟아내고 허구헌날 툴툴거리기나 하니. 안그래도 미운 오리새끼인 3CF가 어디 곱게 보이겠어. 질질 끌던 차에 결국 teamcscw는 3cf를 버리기에 이른다. 그당시 teamcscw의 입장을 보도록 하자.

[과객전대] 3cf(samryu) 계정에 대한 과객전대의 입장. by cscw.ORG.
Level 최고관리자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

3CF 가 이렇게 거대화 된 것을 축하해드려야겠지만, 우리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더 이상 모시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3CF의 팬으로서 보노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계정을 드렸고. 보노님을 비롯한 당시 작가님들의 멋진 만화들로 인해 하루에도 상당한 방문객이 몰려드는 대형 홈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정을 제공중인 teamcscw.com 에 물려있는 회선의 하루 최대 트래픽이 제한되어 있고, 서버 전체가 느려져서 다운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일반 유저들에게 배당된걸 제외하고 그 나머지의 절반을 3CF에만 제공하여 계속되는 서버튜닝작업으로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언제나 서버작업에 힘써주시던 과객전대님들의 최근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 밖에 안된다' 라는 의견을종합하여 두목에게 통지하였기에 3cf에 대한 서비스제공을 다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서버를 코로케이션으로 회선업체에 놓으면 트래픽 얼마까지를 기본으로 계약을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루에 오가는 트래픽이 이 계약된 선을 넘으면 위약금으로 초과한 분량만큼 회선 사용료를 더 내게 되어있습니다. 안그래도 강력한 회선비에 위약금까지 낼 여유가 현재는 없습니다. 저희는 모 디지털 카메라를 주제로한 커뮤니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모 법인처럼 '돈버는 단체' 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트래픽초과 상태에서만 볼수있는 접근거부 화면을 이렇게 저렇게 재미있게 바꾸는 것으로는 이제 과객전대님들이 스스로 위로할수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군요.

여기까지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구요.

현재 과객전대 분들께서는 '우리가 왜 갖은 오해를 받으면서 계속 계정을 제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며 연일 불평을 하고 계십니다. 두목이 과객전대에게 해주는거라고 해봐야 가끔씩 만나서 밥 같이 먹고 노래방이나 같이가는 정도 외엔 없습니다. 돈한푼 안받고 서버관리를 두목을 포함한 과객전대 분들이 하고있는데 처음엔 '관리자라서 원래 이런저런 소리다 듣게 되어있다' 며 서로 달래며 해오다가 최근에 어느 잘나신 분이 'teamcscw 직속 홈페이지들은 트래픽 제한이 없다' 내지는 '5G면 너무 작은거 아닌가' 등의 갖은 의혹을 제기하는등 일부러 보러가거나 알려하지 않아도 이런저런 불만이나 오해,의혹이 전해져 오는데 3cf측에서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런 오해들에는 과객전대분들 모두 지쳤다고들 하십니다. 조직에 있어서 가장큰 문제인 '사기저하'가 오고 있는 것이지요.

대체 어디서 어떻게 확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뭐 홈페이지 주인만 보라고 전해준 트래픽모니터 url을 다 돌려서 보고했으니 root용 트래픽 모니터도 어떻게 유출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Teamcscw.com 에 직접 밑에 속하는 홈페이지들은 트래픽제한이 없는게 맞습니다. 어차피 회선업체서 하루 최대 트래픽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런 저런 계정에 다 '하루 몇G씩' 다 갈라줬으니 본부를 포함한 '직속' 홈페이지들은 트래픽제한을 0으로 해두는게 맞습니다. 그래야 회선업체에서 고정한 하루트래픽에서 계정사용자들에게 다 빼주고 남은 트래픽을 활용할수가 있으니까요.

두목이 생각하기에도 현재 3cf에 대해서는 '밥 안해줘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한테 별로 맛도없는 밥에다가 반찬까지 차려주고는 '쓸데없는 짓 한다' 고 욕먹는 느낌'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주위에서 '그 친구로부터 너에대한 안좋은 말' 에 대해 자꾸 언급하게 되면 좋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겁니다. 더군다나 그런 말들의 출처가 아주 믿을수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과객전대가 '현재 3cf에겐 본부의 계정이 필요없을것 같다' 가 판단한데에는 글의 처음에 밝힌 현실적인 이유 말고 이러한 것들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3cf의 총책임자가 누구인지 저희는 분명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주 차단되는 쓸모없는 계정을 제공하느니 예전의 3cf의 모습을 찾도록 계정을 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것이 예의라는게 현재 과객전대와 두목의 판단입니다. 현재 3cf에게 Teamcscw.com 의 계정은 많은 회원들의 접속을 차단하기만 하는, 사이트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입니다.

종종 트래픽으로 차단되기도 하는 3cf의 제로보드를 이용할수가 없어서(-_-;; 죄송합니다;;;) 이렇게 공지사항에 올립니다.

관계자 분들께선 이 게시물 작성자의 'cscw.ORG' 이름을 꾹 눌러서 메일이나 쪽지 부탁합니다.

의논후 절차를 밟아 깨끗하게 계정을 이전시킬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서 3cf.teamcscw.com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사실 의욕만 있다면 더 허술한 계정으로 옮기더라도 어떻게든 운영이 되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3cf의 본신인 보노의 발걸음이었다. 애초에 삼류만화라는 것을 이 세상에 던져주었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던 보노. 어떤 삼류만화보다도 그의 만화는 재미있었고 그가 하는 것이 곧 삼류만화의 법이 되었다. 그러던 그도 고3이 된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가지 큰 산이 있다고 한다. 입시, 군대, 취업. 그 중에 첫번째 산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야 공부하기 싫어서 적당히 뒷자리에서 공책에 삼류만화나 깨작대가면서 놀았다 치자. 분명히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도 어느정도는 들켰을 테고 많이 혼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입시의 벽에 부딪치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위기감도 들었을테고. 수년간 삼류만화를 그렸지만 그림이 그다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인 성공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3CF의 분위기는 그를 더욱 압박했다.

3CF에서 보노는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그의 말은 법이었다. 교조주의로 물든 수많은 빠돌이들을 거느리고 그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노가 그런 권위에 걸맞는 존재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3CF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고 보노는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런 차에 마침 터진 teamcscw 쪽의 호스팅 거절은 그에게는 상당한 충격과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노는 자전거 경매장 사건을 마지막으로 3CF에서 사라진다. (이 만화는 본인이 보노에게 직접 남겨줄것을 부탁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올렸던 자기의 만화들도 남김없이 지워버린채. 3CF 뿐만이 아니라 아예 인터넷 자체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보노는 영광스러운 과거만을 남긴채 고3의 기나긴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다.

애초에 3CF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ExCF로 넘어간 후에도 간간히 보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3CF에 대해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불쾌해 했으며, 3CF를 그만 두고 다음 시험에서는 전교 탑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인재였던 것이다. 공부쪽으로 보나, 인터넷 문화쪽으로 보나.

그 후 3CF에서 중요한 인물이던 Dr.Gothic에 의해 ExCF로 명맥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보노가 빠져나간 탓인지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5G 트래픽도 부족하던 옛날과 달리 이제는 500M 트래픽도 충분하고. 예전처럼 만화들이 독기에 서려있는 것도 아니고. 또 예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도 모가 나지가 않아서 티격태격 싸우는 것도 없고 조용하다. 결국 그렇게 3CF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이 있다. 전쟁할 때 보면 맨 앞에서 총알받이로 적진에 뛰어드는 부대를 뜻하는데, 맨 앞에서 총알이란 총알은 있는대로 다 맞으면서 죽기살기로 적진에 침투해주는 이 아방가르드가 없으면, 뒤에 있는 부대가 아무리 강해도 싸움이 안 된다. 즉 자신의 몸을 불살라가며 무언가를 일으키는 힘. 그것이 바로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3CF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은 것이고.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벌써 잊혀져가고 있다. 만화가 남은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 이런걸 남겨놓을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이에 본인은 이런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3CF 추억의 장을 만들게 되었다. 비록 모든 만화를 남겨놓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신중하게 가려뽑은 20편의 삼류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말 돈도 실력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공책에 끄적끄적 대는 것 만으로 인터넷의 아마추어 문화를 선도했던 3CF. 출판매체 중 가장 폭넓은 표현방식을 가지지만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빠른 연재가 힘들었던 만화라는 매체를, 로-파이로 극복해낸 그들. 그랬던 3CF를 추억하련다. 잊을 수는 없으니까.

2004 11 29

3CF 추억의 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