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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공포

13/10/19 17:36(년/월/일 시:분)

데이토나 비치를 갔다. 스카이라인이 아주 낮아서, 머리 위로 하늘이 무척이나 크고 높게 펼쳐져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공포를 느꼈다. 나는 높고 넓은 하늘이 무섭다.



어렸을때, 국민학교 땐가, 나는 매우 생생하지만 비현실적인 기억이 있다.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는데, 내가 사는 빌라와 옆 동 빌라 사이로 아주 거대한 달을 본 기억이다. 그 달은 엄청나게 커서, 5층짜리 빌라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달이 클리가 없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을만큼 현실적이다. 그게 꿈이었는지, 혹은 내 기억이 오염된건지, 하여튼 나는 그 큰 달만 생각나면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때 아빠가 저녁 8시쯤 담배 심부름을 시키곤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밤하늘을 혹시라도 올려다보았다가 그 무섭고 큰 달을 볼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하늘을 최대한 안 보려고 땅만 보며 수퍼에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방심하다가 나는 그만, 자동차 전면 유리에 비친 달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세히 보니 그건 달이 아니라 둥근 조명이 비친 것이었다. 그래도 정말 무서웠다.



달을 보고 무서운 것도 지겨워서 나는 중학교때 학원 옥상에 올라가 달을 뚫어지게 10분간 바라보았다. 당시 읽었던 소설 람세스에 보면 눈부신 태양을 뚫어져라 정면으로 바라봐야 왕으로 인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에게 그 도전 대상은 해가 아니라 달이었던 것이었다.

비록 눈이 부시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실 달을 언뜻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한참이나 무서웠다. 그래도 계속 집요하게 바라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이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원근감이 사라지고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나서, 나는 이 달이 크게 보였다 작게 보였다 들쑥날쑥했다. 분명히 정신을 집중하고 보면 저 달은 가만히 똑바로 있는데,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달은 내 지독한 근시와 난시의 영향이었는지 정말 이상한 형태로 일그러져 보였다.

결국 달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포기하고 옥상을 내려가며 원망섞이니 눈으로 달을 다시 보았는데 그건 항상 쉽게 바라보던 2D의 납작한 달이 아니라 3D의 둥그스름한 입체 달이었다.



아주 피곤한 늦은 밤, 침대에 누우면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내 등이 침대가 아니라 천장에 붙은 것 같고, 눈을 감고 한참을 굴러가면 아주 추운 북극까지 굴러갈 것 같앗다. 내 등 뒤에는 아파트 10층이 있고, 그 아래로는 거대한 지구가 있고, 어느새 나는 무한한 우주에 붕 떠 있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상상인가 싶어서 얼른 정신을 차리면, 나는 언제나와 같은 내 방에 멀쩡히 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누워 눈을 감으면 내 머리는 핑핑 돌며 무한한 우주에 정처없는 미아가 되어 끊임없이 떨어져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럴땐 나는 재빨리 자위라도 하고 잠을 청해야 했다.



중학교때 수련회를 갔는데, 밤하늘이 쏟아져내릴듯이 별이 많았다. 나는 달 하나만 봐도 무서운데, 이건 하나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떼거지로 있으니 나는 차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위험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안다. 왜 무섭냐 물어보면 나도 이유를 못 대겠다. 그저 뭔가 머리속에 콱 박힌 어린시절 무서운 이미지 한 장이 계속 맴도는 것 뿐이다. 나로서는 그저 잠깐 우울한 척 고개를 숙이며 말이 없어지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데이토나 비치를 갔다. 스카이라인이 아주 낮아서, 머리 위로 하늘이 무척이나 크고 높게 펼쳐져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따뜻한 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흐뭇해졌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늘은 무서웠지만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나는 하늘을 보면서도 하늘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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