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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13/11/26 00:38(년/월/일 시:분)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봤다. 난 당연히 최근 지상파 뉴스들이 매우 연성화되어 추운 날씨 아니면 김장 얘기나 할까 싶었는데, 왠일로 정치뉴스를 탑으로 올렸다. 게다가 정권퇴진운동을.

마침내 시절이 바뀌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뉴스를 자세히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뭔가 책잡힐만한 얘기를 해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평소에는 6시 내고향처럼 아무래도 상관없을 날씨와 생활 얘기만 줄창 하다가, 반정권 세력에 결함이 보일때만 정치뉴스를 올리는 치사함은 여전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름에 '정의'가 들어갈 정도로 종교적 색채보다는 운동권 색채가 훨씬 강한 특이한 단체인데, 박정희 시절 인권운동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를 폭로하는 것까지 도와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운동권이다.

근데 사제단이 비교적 과격하긴 하지만, 원래 천주교가 김수환 추기경때부터 운동권을 도와주는 편이었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면 도망치는 곳이 명동성당이었고, 경찰이나 군대도 차마 명동성당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잡아가질 못했다.

또 최근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도 사회적 발언에 거리낌이 없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천주교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비교적 높게 치는 편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384667
교황 “세계화는 불공정 시스템… 동성애자·낙태 여성에 자비를”


한편 중산층의 지지율을 먹고 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건에 괜히 민감한게 반응한게 아니라, 이유야 어찌됐건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016186
[JTBC 여론조사] '종교인 정치참여 반대' 55% vs '참여 가능' 37%

https://twitter.com/bobhang/status/402681005804244992
박근혜 정부는 한국 중산층이 거의 무의식적인 공포를 갖고 있는 코드를 효과적으로 건드린다. 이념 문제, 그리고 노동 문제다. 진보 진영에서 이 두 이슈가 등장하면, 중산층은 불편해하며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 통진당(이념 문제)과 노조(노동 문제)는

https://twitter.com/bobhang/status/402681055494164480
좋은 먹잇감이다. 좁은 지지 기반, 강한 결집력과 낮은 확산력, 중산층의 공포를 자극하는 이념·노동 이슈. 이 세 요소가 합쳐지면, ‘똘똘 뭉친 소수 반대파 대 방관하는 다수파’ 구도가 등장한다.

https://twitter.com/bobhang/status/402681179221946368
이 ‘반대의 동원’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면 일종의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열광적이고 목소리 큰 반대파의 기세가 높아지기 때문에, 마치 반대 여론이 우세하고 정권이 치명적 위기에 몰렸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https://twitter.com/bobhang/status/402681338064424960
이 때문에 ‘반대의 동원’ 전략의 핵심은, 중산층이 반대 블록에 가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대목에 대단히 민감하다. 전교조, 친노, 통진당, 전공노 등의 반대를 자극할 때에는 단호하고 외골수적인 태도를 보였던 박근혜 정부가,

https://twitter.com/bobhang/status/402681482319101952
유독 예민하고 빠르게‘회군’을 택한 장면이 둘 있다.올해 8월, 중산층 과세부담이 다소 늘어나는 세법개정안에 반대여론이 일 기미가 보이자 즉각 철회했다.9월에는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후퇴하며 이례적인 사과를 했다.전자는나흘,후자는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정권퇴진운동이 발화하려면, 자신의 이익에 민감한 중산층을 포섭해야 한다. 이들은 고작 부정한 댓글 정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노인들의 부동산이 실제로 타격을 받거나, 직장인의 세금이 납득할 수 없을만큼 오르거나, 경기가 자영업자의 생존이 불가능할만큼 나빠지지 않는 한 반정권 운동이 시작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혁명이 극심한 빈곤 이후에 왔고, 우리나라도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교체가 된 가장 큰 이유가 IMF 위기였다. 정치적 이슈를 경제적 이슈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통장에 심각한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 한, 이런 운동은 정당성에 비해 무위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능한 정치인의 입장이고, 종교인이나 일반인이 이러는 것이 오히려 매우 훌륭하고 자기 희생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지금 시대에 문제의식이 있고, 나같은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위로 그치더라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고, 이것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어떤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요즘 즐겨 하는 캔디 크러쉬 사가를 예로 들자면, 이런 천주교 사제단의 정권퇴진운동은 특수캔디를 만드는 것 같다. 일단 특수캔디를 만들어놓으면 지금 당장 미션을 클리어하는데는 쓸데가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운이 좋아서 큰 게 터질때, 그 특수캔디들이 같이 터지면서 더 큰 콤보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막연한 기대감으로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기껏 특수캔디들을 잔뜩 만들어놨는데, 그걸 연결해주는 유능한 정치인이 없어서 이번 판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실망스럽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 저기서 특수 캔디들을 만드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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