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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규태 코너를 싫어했다

06/02/27 05:57(년/월/일 시:분)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2/200602220467.html
이규태 코너 마지막회 - 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2006년 2월 25일 조선일보 이규태 별세

우리 집에서는 신문을 두개 본다. 모든 것을 정치의 논리로 바라보는 조선일보와, 모든 것을 돈의 논리로 바라보는 매일경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편파적인 논조를 가지고 있는 두 신문을 매일 아침마다 보면 새삼 참, 세상이 얼마나 편리하게 보이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두 신문은 우리에게 환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정치나 경제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그래서 결국엔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노조 탓이고, 철없는 젊은이들 탓이다. 반면 현실을 직시하는 한겨레신문 같은 걸 보고 나면 아침마다 속이 턱턱 막힌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썩어있나 심층 분석하고 다 까발려놓잖아. 정말이지 보기 힘들다.

그런 조선일보의 꿈같은 환타지적 논조의 바탕에 이규태씨가 있었다. 뭐 꼬투리 잡을 일이 생기면 "옛날에는 말이야.." "외국은 말이야.." "옛 문헌에 보면 말이야.."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논리를 끌어내는 것이 이규태 코너의 정체였다. 즉 이규태 코너는 나이 많은 분들이 요즘 젊은 것들을 야단칠 때 부족한 논리를 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조선일보나 매일경제에 "외국의 경우.."를 드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1. 왜 외국에서는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 그러냐? 2. 왜 외국에서는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러냐? 결국 일부 케이스에 불과한 외국 이야기를 끌어와서 어떻게든 자기네 논리로 꿰어 맞추는 그 억지스런 집요함. 그래서 나이 많이 잡수시고 돈 벌만큼 버신 어르신들이 철없는 요즘 젊은 것들을 혼낼 때 논리를 뒷받침해 줄 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이규태 코너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규태 코너를 싫어했다. 이규태 코너에는 균형잡힌 시각이 없었다. 그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꼭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꿈 같은 얘기겠지만, 나는 이규태씨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다. 중학교 방학 때였나, 나는 아차산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어느 산 골짜기에서 나는 막 밑에서 올라오던 등산객들과 스쳐 지나갔다. 그 일행 중 한명이 계속 무언가 말을 잇고 있었다.

"참 우리 대단하신 이규태씨. 정말 이러쿵 저러쿵 이규태씨... 우리나라 최고의 이규태씨 이규태씨 이규태씨...."

그 끝없는 아부를 이규태씨는 불쾌한 표정으로 잠잠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규태씨는 주말에 그저 등산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서까지 일을 떠나지 못하고 이런 아부를 들어야 하다니. 이규태씨는 어떤 기분일까.

뭐 덕분에 그 등산객들이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니 마을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일은 잊혀졌다. 하지만 이규태씨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 아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이규태씨가 듣고 싶어했던 것은 그런 아부가 아니라 쓴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쓴소리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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