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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슬람의 보물전 - 국립중앙박물관

13/10/19 07:57(년/월/일 시:분)

지난 주말, 아내가 전시회 하나를 보자고 해서 같이 갔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슬람의 보물전이었다.


- 유구한 문화 나라의 폐쇠성 vs. 석유 졸부 나라의 개방성

이슬람 문화권은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문화유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관광이 어려워 참 보기가 어려운데, 마침 이런 전시회를 무려 한국까지 와주다니 안갈수가 없었다. 물론 한국만 오는 건 아니고 전세계 투어 중.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란, 시리아 등 이슬람 근본주의로 가는 나라들이 대체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 에미레이트 등 석유로 경제가 급성장한 나라들이 문화가 별볼일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졸부나라들은 문화예술도 유치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못 살다가 갈비탕 같은게 갑자기 잘 되서 돈을 번 졸부들이 문화예술에 조예가 얕은 경우가 많은데,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전시회도 안타깝게도 석유로 돈을 버는 쿠웨이트에서 온 것이라 아주 대단한 건 아니다. 이슬람 대부분의 나라들이 본국인의 초청이 없으면 비자도 안 나오는 판에 쿠웨이트는 돈만 내면 비자가 나오는 너그러운 나라다. 그만큼 개방적이고 그래서 이번 전시회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이슬람 전시회를 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참으로 귀중한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이란이나 시리아나 하는 나라들도 전쟁을 멈추고 자유롭게 관광객을 받아들일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그래야 나도 좋은 것 좀 보고 살지.



- 아라베스크 무늬

이슬람 예술의 특징은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엄격해서 그렇다. 그래서 맨날 글자만 죽어라 그리는 거고, 그러다보니 모노그램이 발달했다. 그래서 루이비통이 그렇게 잘 팔리나 ㅋㅋ

재미있는 건 동물은 못 그리는데 식물은 그린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살아있기는 매한가지고, 식물도 숭배하지 말란 법은 없을텐데 모르겠다. 하여튼 아라베스크는 글자, 식물, 아니면 아무래도 좋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아주 복잡하고 우아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근데 이것도 초창기에나 엄격하게 지켰지, 현대에 올 수록 이런저런 문화가 섞이면서 군기가 빠졌는지 슬슬 동물이나 사람을 은근슬쩍 그려넣는 경우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사는 세상은 어딜가나 비슷한가 보다.



- 글자 무늬의 게슈탈트 붕괴

재미있는게 글자를 무늬로 쓰는 건데, 글자라고 해봤자 꾸란의 몇몇 구절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즘으로 치면 "사랑" "행복" 아니면 "웰빙" "힐링" 이런 글자를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날때까지 무한정 반복해서 쓰는 것.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더 이상 글자로 보이지가 않는다 ㅋㅋㅋ

덕분에 타이포그래피가 극도로 발달했고, 형이상학적인건지 형이하학적인건지 기하학적인건지 하여튼 뭔가 보고 있으면 편집증이 올 정도로 정밀하고 꼼꼼하게 세밀한 문자를 잔뜩 박아 넣었다. 그나마 역사 초창기에는 좀 간단한 편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라베스크 2.0 3.0 4.0 XP Vista 7 이렇게 판올림이 되는건지 점점 세밀하게 해상도가 올라가서 나중가면 무슨 월리를 찾아라를 보는 것 같다.



- 이슬람의 빨강 vs. 중국의 빨강

이슬람에서는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중국도 빨간색을 좋아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중국이 다홍색에 가깝다면 이슬람은 크림슨에 가깝다. 이슬람이 좀 더 탁하고 묵직하고 중후하다.



- 양탄자 문화

이슬람교는 하루에 5번이나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야 하다보니 바닥에 뭘 까는 문화가 발달한 것 같다. 이태원의 이슬람 성당도 바닥에 거적대기를 깔아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을 맨발로 다닐 수 있고 구석에서 자빠져 자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페르시안 양탄자가 유명하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왕족이 쓰던 것들이라 더욱 현란하고 무엇보다 정말 사이즈가 큰 것들이었다. 개중에는 북유럽 풍으로 마리메꼬를 연상케 하는 산뜻한 색감인 것도 있어서 아내가 탐을 내기도 했다.

참고로 이슬람 = 아랍 + 페르시안 인데 의외로 이 둘이 사이가 나빠서 잘 구분해서 써야 한다. 문화가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싸우게 됐는지 이거야 원.



- 지나치게 여성적인 남성 액서서리

이번 이슬람 전시회 보석 파트의 70%가 한 왕의 것이었는데 너무나 블링블링 여성적이라 게이가 아니었을까 의심했다. 아니 금 + 루비 + 사파이어 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남성적인 느낌을 낼 수 있는데, 이상하게 너무나 반짝반짝 화려하게 만들어서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 한국의 도자기는 다 어디갔나

온 김에 옆에 상설전시도 봤는데 한국의 도자기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슬람은 금속공예나 양탄자, 보석, 칼, 건축, 책, 서예는 아름다웠지만 유리공예나 도자기는 많이 부족했다. 특히 도자기는 중국지역에서만 나는 특수한 무슨 흙이 없어서 잘 안 빚어졌다고 한다.

근데 한국의 도자기는 그냥 언뜻 봐도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괜히 웹툰 도자기가 나온 게 아니었어! 옛날에는 좋다는 생각이 잘 안 들었는데 이제와서 보니까 이렇게 좋은 걸 몰랐구나 싶네.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22090
도자기 - 호연

근데 예쁜건 대부분 신라시대 것이고 고려 조선은 유물이 너무 부족했다. 안 만들진 않았을텐데 다 어디 뺐긴 거 아니여... 어딜 가야 고려 조선 도자기들을 볼 수 있나?

그래도 신라시대 유물이 남아있는게 신기했다. 너무 오래 낡은거라 가치를 몰라서 냅뒀던 걸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팔만대장경과 달리 작은 페이퍼백 사이즈라 좀 우스울 정도로 작고 간편해보였다.


- 결론

하여튼 잘 봤다. 근처에 동부이촌동 가서 동빙고 팥빙수도 먹고 도스 타코스도 먹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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