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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문명과 야만의 충돌

14/09/29 13:32(년/월/일 시:분)

최근 기술사 공부를 쉬면서 내가 본 TV 프로들.

- JTBC 비정상회담
-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 EBS 글로벌 프로젝트 - 나눔
- EBS 다큐 프라임 - 아시아의 열대

하나같이 글로벌 문화를 다룬 프로그램들이다. 아무래도 내가 해외취업을 생각하다보니 이런 쪽에 자꾸 관심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중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것이 아시아의 열대였다. 인터넷에서 아래 글을 보고 꽂혀서 찾아봤다.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32179004
원주민 부족들의 진실.jpg

찾아보니, 이들 흑인 원주민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원주민이었다. 마침 최근에 봤던 "액트 오브 킬링"도 인도네시아라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었다.

http://xacdo.net/tt/index.php?pl=2459
『 액트 오브 킬링 - 몰카 형식의 심리치료 역할극 』


인도네시아 원주민은 아프리카와 달리, 본인들의 생활상을 관광코스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가격도 저렴한 6일에 600불 수준. 그러고는 원주민들은 보통 하루에 5불 정도를 일당으로 받는다.

최근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 나왔던 원주민도 이런 관광상품의 일환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문명과 떨어져 사는 오지의 원주민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생활 속으로 녹아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생계를 위해 원주민 복장을 갈아입고 연기를 하는 문명인이었던 것이다.


EBS 다큐 제작진은 이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의 인도네시아학 교수와, 인도네시아 현지의 인류학 교수를 동행하여 원주민들의 가장 깊숙한 생활 속까지 파고들어간다. 보통의 관광기 브로커를 통했다면 이렇게까지 깊이있는 취재가 불가능했을텐데, 교수를 동행한 것이 다큐의 깊이를 더한 것 같다.

원주민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전통복장 때문에 성기를 노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하지만 자식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싫은 일을 감수하는 것. 이런 인터뷰를 따는 것은 일반적인 통역 가이드를 통해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EBS 다큐 제작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심도있는 관찰을 계속한다. 사실 그들도 매주 일요일마다 가장 깔끔한 서양식 옷을 입고 성당에 가는 문명인들이었고, 하지만 관광수익이 형편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인도네시아 파퓨아 지역에 이렇게 현대문명이 빠르게 전파된 것은 고작 90년대부터였다. 물론 1930년대부터 기독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문명이 전파되기 시작했지만, 9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의 원주민 이주 정책의 일환으로 그들이 전통 문명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말이 좋아 전통 문명이지, 사실상 야만이었다. 물론 이런 말은 차별적인 단어라 사용하면 안되지만, 솔직히 말해 완전히 미개한 원시 문명이었다. 부족간의 전쟁이 5년에 한번씩 일어났고, 생계를 위해 서로를 죽이고 쫒아냈다. 남자는 죽여서 식인을 하고, 여자는 아내를 삼고, 아이들은 키워서 전사로 삼았다. 100명의 아내를 얻었던 추장의 훈제 미라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그들이었다.

왜 식인을 하는가? 혹시 상대방의 영혼을 받아 더 강해지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미인가? 이렇게 묻자 원주민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 단순히 맛있어서 먹는 것이었다. 정글의 원주민들은 농사나 경작을 하지 않았고, 딱히 가축을 키우는 것도 아니어서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사람 또한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 문명도, 현대 문명의 이기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져내렸다. 남성 성기를 길게 강조하는 코테카를 입다가, 팬티를 입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으면, 솔직히 너무 편하지 않을까? 여기에 핸드폰을 쓰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도박을 하면, 세상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현대문명에 눈을 뜬 이들은, 정부에서 지원한 보잘것없는 정착금, 지원금을 몇 달만에 탕진하고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다시 부끄러운 전통복장을 입고 일당 5달러에 전통 문화를 연기하거나, 또는 그보다 더 시원찮은 일자리를 가지거나 범죄에 노출되는 길 뿐이다. 살인과 폭력이 일상적이던 전통 문명에 젖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냉혹한 경쟁에 노출되었을 때, 남는 것은 비참한 현실이다.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전쟁은 2006년이라고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전쟁은 없다. 대신 전쟁의 비참함을 빈곤의 비참함이 대신하고 있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인도네시아 황인들은, 흑인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사다리의 아래쪽으로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이들이 정글에서 나와 도시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상으로 집을 지어주고, 집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주었다. 그나마 노인들은 그래도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지만,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층들은 당연히 떠나고 싶어한다. 현대문명의 달콤함을 맛본 젊은이들이 과연 후줄근한 정글에 더 머물고 싶어하겠는가.

결국 세대간의 충돌이 일어난다. 떠나는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아버지. 하지만 바깥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자식. 자식이 떠난 빈 자리를 슬퍼하는 부모. 그러나 바깥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자식. 흔한 비극이다.

그나마 괜찮은 경우로는, 부모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 공무원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경우다. 정말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돈을 모아서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들의 교육열, 그리고 이런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치열하게 성공을 갈망하는 젊은 세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록, 나는 다름 속에서 같음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돈 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하던 원주민들이, 경제 관념도 없이 갑자기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을때 그 문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온 몸에 땀을 흘려 지칠때까지 사냥을 하지 않아도, 시장에 가서 돈만 쥐어주면 바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술도 맛있고, 담배도 맛있다. 그리고 도박에 눈을 뜬다. 그러다 싸움이 난다.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빈털털이다.

글씨는 커녕 숫자조차 세지 못한다. 아무리 계산해도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 반복된다. 슬픈 마음에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여기서 성공해야겠다, 악착같은 의지만 커진다... 지금 내가 인도네시아 원주민 얘기를 하는건지, 우리 한국의 아버지 세대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인도네시아 정부가 잘 돌아가면, 이렇게 흑인 원주민 동화 정책에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애초에 민족간 동화 정책은 미국에서도 실패한 바 있고, "액트 오브 킬링"에서 본 것처럼 인도네시아 정부도 썩 잘 돌아가는 편이 아닌지라 정말 앞으로가 걱정이 많이 된다. 황인과 흑인의 인종갈등을 피할 수가 없어 보인다.

민족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소수 인종의 인권 보장과 경제적 특혜를 주면서 인종을 넘어선 국가적 통합을 이뤄나간다면 최고겠지만, 그렇게 평화가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 빨갱이들의 목을 따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던 황인종 노인이 생각이 난다. 그 건달들은 스스로를 "프리맨"이라 부르며 물리적 강인함을 칭송했다. 우리는 이렇게 강하다! 우리 덕분에 인도네시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전쟁에서 크게 이겨 100명의 아내를 얻었던 원주민 추장의 훈제 미라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강하다! 너희 모두를 구워 먹을테다! 어디 덤빌테면 덤벼봐라! 물리적 강함만을 강조하고, 경쟁에서 낙오한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문명은 어디까지나 피비린내나는 야만일 뿐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인도네시아 흑인 원주민에 대한 관심이, 파고들수록 피할 수 없는 절망으로 끝을 맺었다. 어쩌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고, 역사적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심한 무력감 너머로, 어쩌면 이런 우리 인간의 고질적인 한계를 넘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미래가 아주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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