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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모든 욕구를 반드시 해소할 필요는 없다

07/05/21 04:07(년/월/일 시:분)

성욕과 섹스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성욕이 일 때마다 섹스를 해야 할까? 성욕은 선천적인 것이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어난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녀부터, 완전히 늙어버려서 발기조차도 되지 않는 늙은이에게까지, 심지어는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스티븐 호킹에게도 성욕은 잔인할 정도로 공평하게 일어날 것이다. 실제로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 병으로 온몸이 마비된 후에도 2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슬하에 자녀가 3명이나 있다. 이렇게 성욕은 꼼짝도 못하는 몸을 움직이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우리의 몸은 주기적으로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충동을 부채질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몸을 움직여서 누군가에게 유전정보를 전달해서 생식행위를 하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그것이 서로 합의된 행위를 통해서건, 범죄 행위를 통해서건 상관없이, 우리의 뇌는 성욕을 어떻게든 해소하라고 명령한다.

그렇다면 모든 성욕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성욕은 해소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때론 고행하는 스님처럼 평생을 자위조차도 하지 않아도 생존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이 성욕이다. 심지어는 어느 밤 어딘가에서 돈을 주고 섹스를 사서 하더라도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사정은 했는데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 즉 욕구와 해소는 별개의 문제다.

식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식욕이 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꼭 배고프면 먹어야 할까? 물론 먹어야 살겠지만, 꼭 욕구에 따라서 먹을 필요는 없다. 배부를 때 먹고, 배고플 때 굶어도 살아남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타고난 식욕을 억제하며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살을 찌우기 위해 먹기 싫은 퍽퍽한 닭가슴살을 억지로 먹기도 한다. 즉 식욕을 항상 해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살인충동은 어떨까. 누구나 가끔은 경험하겠지만, 나도 가끔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구가 든다. 정말 어떤 순간에는 머리 속이 짜릿해지면서 이성을 잃고 범죄자가 되버릴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욕구가 반드시 해소될 필요는 없다. 내가 만약 살인 충동이 일 때마다 사람을 죽였다면, 나는 아마도 조승희 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것이다. 내가 물론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족한 것 없이 곱게 자란 건 사실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가끔 한 순간 빡돌아서 정말 죽이고 싶은 생각까지 다다랐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러분도 나와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렇잖아.

때론 남의 애인을 빼앗고 싶기도 하고, 로또에서 일확천금을 바라기도 하고, 남의 지갑을 훔치고 싶기도 하겠지. 나는 그런 욕구를 이해한다. 그런 욕구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욕구를 반드시 해소할 필요는 없다. 욕구는 해소하던 하지않던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항상 존재한다. 설령 욕구를 해소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욕구는 다시 똑같은 형태로 인간의 목을 조르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게 채찍질할 것이다.

그럴때는 나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욕구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가면서 해봐. 사람이 생리적 욕구만 따른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먹고 싶은대로 먹고, 자고 싶은대로 자면 건강해지겠어?

나는 당뇨병에 걸려서 매일 1시간씩 조깅하고, 생식만 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나처럼 먹는 걸 참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당뇨병을 고치기 위해 매일 야채만 먹고 뛰느라 많이 고통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3개월 정도 꾸준히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니까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서 살면 당뇨병에 걸려서 나중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살던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욕구를 해소하던 해소하지 않던 삶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때론 우리는 불나방처럼 불이 뜨거운 걸 알면서도 불을 향해 날아간다. 욕구만 따라가면 우리의 몸이 어떻게 파괴될 지 뻔히 알면서도, 그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고 이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하는 길이라고 자위하며, 나의 자유 의지를 따르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차곡차곡 자신을 파괴시킨다.

나는 이런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이해하는 만큼 참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가능하면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든다. 나도 인간인 만큼 언젠가 그런 상황이 닥치면 꼭 나의 욕구를 억제할 자신이 크게 없기도 하고. 하지만 왠만하면 안 그러고 싶기도 하고.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677

  • 제목: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1995)
    Tracked from 작도닷넷 07/06/03 06:07 삭제
    라스 베가스를 갔다 온 기념으로 챙겨봤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제목과, 창녀와 알콜중독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사전지식만으로 유추해 본 나의 스토리은 이렇다..
  • 핑크 07/05/23 06:48  덧글 수정/삭제
    글 잘 봤습니다 ^^ 이렇게 비교적 공정한(?) 입장의 남성의 글은 오랜만에 봐서 참 좋네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 전에 수영 선수 딸과 아빠에 대한 글도 참 좋았었는데 미처 댓글을 달지 못했었군요. 그 글은 정말 많은 남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음! 흐흐
  • 07/05/24 01:05  덧글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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