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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학력위조

07/08/28 03:56(년/월/일 시:분)

몇년 전에 취업 세미나에서 들은 얘긴데, 취업 담당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라. 이력서를 받아보면 아무런 경력도 없이 달랑 신상명세만 적어서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그냥 뭐 컴퓨터동아리 회장으로 활동, 이 정도는 적당히 지어서 적어내도 되지 않나? 사람들이 동아리 활동 정도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해롭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지어내라.

나는 그때 꽤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렇게 취업담당자라는 사람도 도덕 불감증에 걸렸구나..." 하고 충격받은게 아니라, "뭐야, 이력서를 그렇게 대충 써도 되는거야? 왜 진작 몰랐지!" 하고 충격을 받았던 것. 이런 것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었을까! 옳거니!

그때가 대학교 2학년 때였나. 다른 애들은 어떻게 잘도 아르바이트를 따내서 하고 그러던데. 아무래도 컴퓨터공학도들의 낭만은 어디 작은 회사 프로젝트를 따내서 방학 동안에 뚝딱 만들어 제껴서 한 돈백만원 손에 쥐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그게 잘 안 됐지만.

생각해보면 그때 적당히 뻥을 쳐서 나는 이런 것도 했고 저런 것도 해봤다... 그러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애들도 다들 그런 식으로 일을 따내는 것 같았고. 다행히도 나는 말빨이 별로 세지가 않아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시기를 넘기긴 했지만, 나 역시 별로 거짓말을 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안 했던 건 아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office_id=015&article_id=0000989214
스타강사 줄줄이 학력 삭제 ... 학원가에도 거센 '학력위조' 후폭풍

고3때 소위 "마감강사"들에게 단과강의를 들을 때도 그랬다. 아니 어떻게 된게 다들 서울대 출신이야? 그 유명한 메가스터디의 손선생도 서울대 출신이고. 누드교과서도 서울대 출신이 만들었다고 유명해졌고. 도대체 서울대가 얼마나 크길래 다 하나같이 서울대야.

서울대 한해 입학 정원이 3000명 정도고, 지금 그마저도 많다고 줄이는 판국에, 왜 이렇게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 많나 싶었지.

http://news.naver.com/news/read.php?office_id=118&article_id=0000001954
범여권의 대선후보 영입 1순위로 꼽히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출마 관련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략) "미국의 대표적 사립대학 10개 졸업생이 1만명이 안되는데 비해 서울대, 연대, 고대의 한 해 졸업생수가 1만 5천명일 때도 있었던 것은 우리 대학교육의 질이 높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tv/read.php?office_id=055&article_id=0000018501
서울대학교가 내년 입시부터 학부 신입생 정원을 3천명으로 지금보다 8백명 줄이고, 오는 2010년까지는 2천 5백명으로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학원 입구에 보면 올해 서울대 xx명 보냈다고 자랑스럽게 붙여놓고, 학원 강사들도 서울대에 몇명 보냈냐 하는 것이 곧 실력이었고. 메가스터디 손선생도 서울대 출신으로 서울대를 많이 보내서 유명해졌는데, 그 비결은 막 빳다로 줘 패면서 억지로 공부시킨 것이었지. 요즘도 "지옥학원"이라고 불리는 기숙사 학원에서 여전히 그러고 있다.

아니 그건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어. 교장선생님이 조회시간에 학생들 모아놓고 우리 학교는 한해에 서울대를 xx명 보내는 명문 고등학교다, 이러고 있었으니. 그래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키고. 나같은 경우에는 그거 끝나고 또 학원을 갔어. 매일 밤 12시~1시까지 공부하고, 또 주말에도 하루 종일 학원 가고... 아 정말 끔찍하다.

공부를 많이 시키는게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너무 학벌에 사람들이 매달리는 것 같아. 2007년 수능 응시인원이 60만명이고, 서울대 입학정원이 3천명이니까, 전체의 상위 0.5%에 들어야 겨우 서울대 농대라도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1급 공무원의 56%를 차지하고 있었다니까. (노무현 정권 이후로 좀 떨어지긴 했다)

http://blog.naver.com/phmany07/40041195014
2001년 3월 중앙인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1급 공무원 243명의 56.4%가 서울대 출신이다. 그 다음으로 고려대(8.2%), 연세대(7.8%), 한국외대(2.9%) 출신이 뒤를 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악순환이 된 것 같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학벌이 높으니까 거기 끼려고 학력을 위조하고, 학력을 위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까 학벌 프리미엄이 떨어지고, 프리미엄이 떨어지니까 입학정원을 줄이고, 정원이 줄어드니까 더욱 합격하기가 어려워져서 공부에 더욱 매달리고... 사람살려.


또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최고 경영자 과정"(AMP)도 이런 학력 인플레를 부추기고 있다.

http://handosa.egloos.com/1619554
경영학과 출신인 나는, 최고경영자 과정 사람들을 참 오랫동안 보아왔고 친하게 지내왔다. 특수대학원에서 영리목적으로 운영하는 '최고 경영자과정'들은 정규 학력이 아니다. 대부분 무학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학력을 인플레하거나 위조할 목적으로 6개월짜리 코스를 듣는다. (중략) 이런 과정을 대학이 개설한 이유는, 자신의 학교 브랜드를 이용하여 돈벌이 장사를 하기 위함이다. 솔직히 말해서 서울대나 고려대의 학교 로고가 폼나게 들어간 각종 기념품과 책상의 액세서리들은 웬만한 사람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보통 최고경영자 과정 1개 학기에서 학교가 벌어들이는 돈은 1억원 가까이 된다. 학비가 대학생 등록금보다 많은데, 주 수입원은 학비가 아니라 기부금이다.


물론 학벌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공부는 많이 할수록 좋고, 가능하면 좋은 조건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 명문대 출신을 뽑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그런게 필요해서 아니겠어? 모든 대학이 완전히 똑같은 걸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대학 간의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물론 학력만 지나치게 따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실제로 학력이 정말로 필요한 분야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의 학력위조는 정말 심각한 문제지.

http://mogibul.egloos.com/3350683
신정아씨로부터 촉발된 학벌위조 파문이 (중략) 돌연 탤런트 영화배우들에게 튀고 있다. (중략) 그 사람들이 잘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저런 만만한 사람들 뒷조사 덕분에 사실 더 심각한 사례들이 기냥 묻혀버리고 있다. (중략)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학력을 속인다는 것은 치명적이며 중범죄임에 반하여 탤런트 가수 등이 학력을 속인 것은 경범죄 정도가 아닐까.



결론. 이제 나도 내년이면 이력서를 써야 한다. 그때 누군가는 적당히 뻥을 치면서 좋은 곳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비즈니스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는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5~10년 안에 한국도 미국처럼 소송으로 먹고 사는 시대가 올 거기 때문에, 그때 사소한 약점을 잡혀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무결함을 쌓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의 시대를 내다보자면, 탄탄한 기술력이나 자본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기보다는, 마치 마이클 조던 이후의 NBA처럼 다들 실력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소한 파울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쪼잔한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때, 처음 이력서에 썼던 한 줄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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