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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 일과 삶의 조화

07/10/24 12:36(년/월/일 시:분)


나는 이 영화에서 '악마'로 나온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참 멋져보였다. 내 직장상사 이상형이 이런 타입이거든. 일 잘하는 상사. 다소 까칠하게 일을 시키기는 하지만, 밑에서 일하면 배울 점이 많고, 최소한 회사가 망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 상사.

같은 캐릭터로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편집장 제이제이를 들 수 있다. 고민없이 신속한 판단을 내리고, 매사에 막힘이 없고, 오프라인 잡지가 안 팔리는 이 불황의 시대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대단한 경영능력! 멋지지 않아?



하지만 이런 일중독 상사들이 항상 부딪치는 문제라면, 역시 가정 문제라던가 건강 문제같은, 일과는 상관없는 일상 생활에서의 문제겠지. 이 영화에서도 결국에는 이 "일과 삶의 조화",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말로는 "역할갈등" 때문에 무너지더라.

http://xacdo.net/tt/index.php?pl=832
일과 삶의 조화(work / life balance)


나도 전공이 컴공인지라 내후년이면 야근으로 악명높은 IT업체에 취직을 해야 할텐데, 그렇다고 야근을 안 할수도 없고, 해외로 취직해도 일 많이 하는 건 다를 바가 없고, 결국 컴퓨터 일을 하면서 일을 많이 안 할수가 없는 상황인데.

물론 일을 오래 하면 좋은게 사실이지. 시간당 효율은 떨어져도 결과물의 양은 어쨌든 많아지니까. 기존의 육체노동이라면 그렇게 시키고 싶어도 못 시켰지만, IT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니까 많이 시킬수도 있고. 그래서 유사 이래로 최대 노동시간을 달성하게 된 거겠지.

그렇다고 무작정 일만 열심히 해봤자 이 영화의 편집장 미란다나 스파이더맨의 제이제이 같은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일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여파로 일상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린 사람들. 결혼생활은 엉망이 되고, 건강도 다 망가지고, 자녀들도 점점 멀어지는, 그러면 사람으로서 살아간다고 말하기 힘들잖아.

패션도 그렇고 잡지도 그렇지만, 한 시대에서 예쁘다, 멋지다, 쉬크하다 라고 보이는 것들은 계속해서 빠르게 변한다. 그래서 마치 주식시장을 보듯이 한시도 쉬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멋진, 비교적 예쁜, 비교적 쉬크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아름다움이나 특종 같은 것은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일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도 그렇고 자녀문제도 똑같다. 남편, 아내가 된다는 것, 혹은 아빠, 엄마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잠시도 쉴 수 없는 직업이다. 24시간 일하고, 휴일도 없고, 맘대로 그만둘수도 없다. 애정이라는 것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변하는 상대방에 따라서 대응을 달리 해야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사랑해"라고 꾸준히 말하고 비싼 옷이나 차를 꾸준히 사준다고 해서 애정이 유지가 되는 게 아니잖아.


며칠 전에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진짜 주부들"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봤거든. 아마도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의 리얼리티 버전인 것 같은데.

http://www.bravotv.com/Real_Housewives_2
Bravo TV - Real Housewives of Orange County

내가 지난 6개월간 어학연수를 했던 오렌지 카운티는 정말로 비싼 동네다. 기후도 좋고, 치안도 좋고, 교통도 좋고, 교육환경도 좋고, 그래서 이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지금에도 땅값이 계속 오르는 곳이다. 집에 수영장, 자쿠지가 딸린 것은 보통에, 3홀짜리 골프 코스가 딸린 곳도 예사로 있다. 집값이 100억도 가볍게 넘어간다. 뉴욕 맨하탄보다 비싸.

그런 비싼 동네에 사는 부유한 백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그게 꼭 돈이 많다고 해서 화기애애하게 잘 살기만 하는 건 아니더라. 남편은 맨날 일하느라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래서 으리으리한 집 안에서 텅 빈채로 아무런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평온한 생활이 계속되고, 그러다보면 웃통을 벗고 정원을 다듬는 허름한 정원사가 갑자기 멋지게 보인다거나, 그러다보면 어느새 집안은 파탄이 나고 그러는 거지.

한번은 아빠가 딸한테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차를 사주는거야. (캘리포니아는 고등학생도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단 오후 5시까지만) 그러니까 얘가 하는 말이 이래.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차를 사줬으니까 사랑한다고 생각할께."

이 아들 딸들을 보면 참 뭐랄까, 어렸을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먹을 것도 잘 먹고, 승마나 골프나 운동도 많이 했고, 배울 것도 잘 배웠으니 정말 완전 쭉쭉 빵빵 몸매도 좋고 생긴 것도 훤칠하고 머리에 든 것도 많고, 그러나 단 한가지 없는 것이 있다면, 개념이 없지.

http://blog.naver.com/z_e_a_l/40034571200
Gwen Stefani - Orange County Girl

저기를 보면 제 2의 패리스 힐튼, 린지 로한, 브리트니 스피어스들이 널리고 널렸다. 돈은 많고 생활도 화려하지만, 일상 생활은 완전히 파탄이 난 사람들.



결론.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미란다처럼 일 잘하는 상사를 좋아한다. 아니 회사가 있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건데, 그걸 망하지 않고 돈을 벌게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해.

하지만 일만 잘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 생활이라던가, 직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라던가 하는 인간적인 부분까지 함께 모두 짊어지고 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ps. 신입사원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에는 별로 공감이 안 간다. 뭐 모델처럼 예쁜 건 사실이고, 옷 입는 거 보고 핸드백 보는 재미가 쏠쏠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뭐랄까 현실과는 거리가 멀잖아.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01&article_id=42498
투덜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며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1&article_id=42620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을 보는 시선① 원작소설과 비교하기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1&article_id=42621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을 보는 시선② 냉혹한 현실과 비교하기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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