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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나라를 찾아서
일곱 살 때, 그는 엄마의 손에 끌려, 난생 처음으로 무단횡단을 했다. 엄마는 단지 바빴을 뿐이지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제까지나 참되고 진실하기만 할 것 같던 엄마가, 우리 엄마가 그럴 줄이야. 유치원에서는 무단횡단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엄마 뱃속에서 태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언제나 파란 불에만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가르쳤다. 엄마도 항상 규칙을 지키라고 했잖아. 그런 엄마가 자기 입으로 한 말을 거스르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가출을 한다.

하지만 집 밖 세상이라도 엄마와 그리 다를 건 없었다. 입으로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몸으로는 거짓을 말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깊은 배신감과 세상에 대한 실망만을 간직한채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진실의 나라는 어디 없는 걸까?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TV였다. TV 속에서는 언제나 착하고 진실한 주인공이 승리했다. 뉴스에서도 거짓을 꼬집었고 결국 진실한 쪽으로 바뀌었다. 어쩜 이렇게 실제 세상과 TV는 다른 걸까? TV 속의 진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궁금함을 못 이겨 TV를 뜯고 그 안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브라운관 안에는 고압전류만이 흐를 뿐이었다. 감전되어 하마터면 죽을뻔한 그는, 커서 꼭 방송국에 취직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갖은 고생 끝에 취직한 방송국. 그러나 당연하지만, 방송국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TV 속의 진실은 카메라 앞에서 거짓으로 연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걸 잘 포장해서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방송의 포인트였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딜 가는 똑같았다. 다들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사는 것 뿐이다.

진실의 나라는 정말 없는 걸까? 아니야. 없을리가 없어. 진실의 나라는 분명히 있어. 일곱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진실의 나라에 살았었단 말이야. 그러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무단횡단해서 거짓의 나라로 온 거지. 그는 아직도 일곱살 이전의, 진실의 나라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다. 모든 것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던, 진실로만 이루어진 세상. 그러던 그는 오래전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을 보내고 있는 대선배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하하, 나도 자네처럼 TV 속에는 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틀렸어. TV 속에는 진실이 없어."
"그렇다면 역시, 진실의 나라는 없는 걸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 진실의 나라는 분명히 있어. 이 두 귀로 분명히 들었다구."

그는 대선배에게 진실의 나라의 지도를 받았다. 상당히 낡은 종이에는 현대 표기법으로 분명히 진실의 나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으로 떠났다. 그의 인생은 그때서야 비로소 시작하고 있었다.

"하아, 여긴가."

오랜 시간을 들여 그는 지도에 표시된, 평생을 거쳐서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진실의 나라에 도착했다. 북극이었다. 남극과 달리 에스키모인도 살지 않는, 사람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공간이었다.

온 몸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그는 홀로, 드넓은 백색 설원 위에 무릎을 꿇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진실로 가득 찬 대기를 가슴 속 깊이 들이마셨다. 이것이 진실이구나. 그 뿐이었다. 허무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진실의 나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사람이 살 수는 없다. 사람이라는 더러운 생물은 진실의 나라라는 고결한 대지에 발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날씨 좋구나."

그는 발길을 돌려 진실의 나라에서 떠난다.


2005 05 03
|hit:2263|200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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