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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글어진 이유
지구가 둥글어진 이유


"할아버지, 지구는 왜 둥글어요?"
"지구가 둥글다니?"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데, 옛날에는 지구가 평평했는데, '코페르니쿠스'라는 사람이 지구를 둥글게 만들었대요."
"그래, 그 얘기가 듣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코페르니쿠스는 왜 지구를 둥글게 만들었대요?"
"그게 다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단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1. 세상의 끝으로 가다

때는 16세기. 그때만 해도 지구는 평평했다. 지평선이 좌우로 3000㎞씩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약간 높은 곳에만 올라가면 전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여행 떠나는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려면 영원히 손을 흔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시력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오존층 대신 물로 된 층이 있어서, 비닐하우스처럼 투명한 수면이 온 지구를 감싸주고 있었다. 햇빛은 공중의 수면에서 산란하며 전 세계로 고루 열을 퍼트려서, 지구 어디든 기후 차이 없이 골고루 살기 좋았다. 또한 태양도 가장 높은 정 가운데 고정되어 있어서, 밤낮없이 세상을 비춰주었다.

이런 살기 좋은 에덴동산 같은 세상에, 코페르니쿠스라는 호기심 많은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저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했다. 전설에 의하면, 세상 끝에는 '나라카' 혹은 '아바돈'이라고 불리는 끝없는 절벽이 있어서, 그 곳에 가면 끝없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납득할 수 없었다. 뭔가 비밀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끝을 숨기려고 그런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끝에는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의 끝에 가보기로 했다.

물론 세상의 끝으로 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걸어도 지평선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가장 이상한 것은 오르막이 아닌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한발 한 발이 무거워진다는 것이었다. 아주 높은 산을 끊임없이 오르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자꾸만 지면에 몸이 달라붙어서, 나중에는 암벽등반 장비를 이용해야만 했다.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뒤를 돌아보면 지금까지 온 길이 절벽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일이다.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의 끝으로 마침내 다다르고야 말았다.

세상의 끝은 전설처럼 끝없는 절벽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떨어지는 쪽이 그 반대편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올라온 평평한 지면이라는 점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몸을 일으켜 세상의 끝을 넘어갔다.


2.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끝 너머의 세상에서 제일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너무 가까운 지평선이었다. 전에는 3000㎞나 떨어져 있던 지평선이 이제는 불과 7㎞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태양이 없었다. 정 중앙에 떠서 영원히 우리를 비춰줄 것만 같았던 태양이 이 곳에는 영원히 떠 있지 않았다.

세상의 끝을 지나 또 다른 세상을 여행하면서, 코페르니쿠스는 이 곳이 지구의 반대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지구는 반구(hemisphere, half globe) 형태였던 것이다. 평평하고 태양이 끊임없이 내리쬐는 평편한 반구와, 둥글고 암흑만이 지배하는 둥근 반구, 이 두개의 반구로 지구는 나뉘어 있었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이었다. 그 둘의 경계면은 중력에너지가 날카롭게 높아지는 곳이라서, 올라갈때는 세상 그 어떤 산보다도 높았고, 내려갈때는 세상 그 어떤 절벽보다도 깊었다. 그나마 코페르니쿠스는 평평한 반구에서 3000㎞짜리 절벽을 올라온 셈이지만, 이 쪽에서 그 쪽은 3000㎞나 되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셈인 것이다. 그렇게 두 세상은 서로 단절되어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그 반대편은 낙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상의 끝만 아니면 넘어가서 살고 싶어 했다. 어떤 이들은 지구 반대편을 미워했다. 반대편에서 햇볕을 독점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쪽이 이렇게 어둡고 추워졌으니 원한을 살 만 했다. 게다가 이 쪽의 표면은 둥글기 때문에 평평한 쪽보다 정확히 2배의 표면적을 가지고 있으니까(4πr = 2 × 2πr), 전쟁을 해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생각에 코페르니쿠스는 평평한 반구 사람으로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코페르니쿠스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짜 나쁜 놈들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구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원래 지구는 완전한 구 형태였는데, 지구 안에 사는 사람들이 지구 내부를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지구를 반으로 쪼개고 무게중심을 평평한 쪽으로 이동시켜서 자전을 멈추고 태양 쪽으로 고정시켰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밤 하늘에 떠 있는 달도 항상 같은 면을 보고 있는데, 그것이 지구의 반쪽이라는 것이다.

지구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니. 코페르니쿠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상 끝에 갔던 것처럼 북극에도 가 보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고생끝에 도착한 북극에는 정말로 지구 안으로 통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구 안은 놀랍게도,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평평한 반구 쪽보다 훨씬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햇볕은 평평한 반구의 수많은 비밀 구멍을 통해 들여오고 있었다. 평평한 반구에 수십 년 동안 살면서도 이런 사실을 몰랐던 코페르니쿠스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확실히 지표라는 지붕은 물로 된 지붕보다 훨씬 견고하고 뛰어났다. 유일한 입구인 북극은 너무 추워서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었다. 지구 안의 사람들은 병을 모르고 지냈고, 건강한 몸으로 영원 같은 수명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이것이 모두, 지구 안의 사람들이 자기가 잘 살기 위해 지구를 반쪽내서 태양 쪽으로 고정시킨 결과였다. 그래서 지구 사람들을 건널 수 없는 3개의 계층으로 분리하고, 그래서 누군가는 햇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두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곳에서 평생을 살게 한 장본인이 이들이라고 생각하니, 코페르니쿠스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다.


3. 하늘에 구멍 내기 프로젝트

지구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원한과 복수의 감정을 잔뜩 가져온 코페르니쿠스는, 넘을 수 없는 벽을 쌓고 누구는 좋게 살고 누구는 나쁘게 사는 지구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전부 다 싸그리 밀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물풍선 프로젝트'였다. 대기 중에 떠 있는 물을 북극의 구멍으로 채워 넣어서, 마치 물풍선처럼 지구를 둥글게 부풀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지구 안에 사는 사람들은 물에 잠겨 몰살하고, 북극의 저온으로 물이 얼어붙으면서 입구가 막힐 것이다. 그 상태에서 지구 내부로 들어간 물은 고온의 핵과 반응하여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지구를 둥글게 부풀릴 것이다.

그렇다면 북극의 구멍에 무슨 수로 대기 중의 물을 쏟아 부을 것인가? 방법은 간단했다. 하늘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대기 중의 물은 처음 지구가 만들어질 때 여러 물질이 차곡차곡 가라앉으면서, 일부는 공기 아래의 물로 쌓이고, 일부는 공기 위의 물로 쌓인 것이다. 지금 상태는 극히 불안정하게 대기 중에 물이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곳에 정확히 미사일을 발사해서 송곳으로 콕 찌르는 것처럼 약간의 파장만 일으켜도, 불안정한 상태가 깨지고 무거운 물이 가벼운 공기보다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미사일을 개발하는 기술과, 그 미사일을 북극의 구멍 위에 정확히 발사하는 기술 뿐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하늘에 구멍을 뚫을 미사일을 개발하는 팀에 합류했다. 평평한 반구에 살던 시절 익힌 각종 기술을 총동원해서, 북극의 상공에 정확히 구멍을 뚫을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했다. 오랜 시간과 돈과 노력과 피와 땀과 생명이 투자된 끝에, 그리고 여러 번의 참혹한 실패 끝에, 수많은 희생과 헌신의 끝에 마침내 그 빌어먹을 미사일이 개발되고야 말았다. 개발 팀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날 밤 축제 분위기 속에서, 문제의 미사일은 의도대로 정확히 북극 상공에 구멍을 뚫었다. 하늘에서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4. 퍼스트 임팩트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북극 상공에서 지구 안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수챗구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듯 끊임없이 물이 들어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구의 구멍이 그 많은 양을 이기지 못하고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구멍에서는 물이 울컥울컥 토해냈고, 역류한 물은 둥근 반구는 물론 평평한 반구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한 몇몇 미사일 개발 팀은 미리 만들어놓은 방주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구 안 사람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에 잠겨 죽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온 지구에 가득 차 있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물도, 천천히 북극의 구멍으로 쓸려 내려갔고, 북극의 차가운 기온으로 구멍은 얼어서 막혔다. 지구 안에 가득 찬 물은 지구 내부의 고온의 핵과 반응해서 지구를 부풀렸다. 물이 역류한 것 이외에는 모두 계획대로 순조로웠다. 단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 외에는.

지구가 본래대로 둥글어지면서, 지구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자전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 무시무시한 규모로 지진이 일어났고, 자전을 시작하면서 낮과 밤이 생겼다. 이젠 햇빛도 전 세계에서 고루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전 세계에는, 마찬가지로 모두 평등하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60일 밤낮이 지난 후, 코페르니쿠스는 방주에서 내려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후회가 막심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세상은 평등해지지 않았는가. 코페르니쿠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세상에는 전에 없던 무지개가 생겨 있었다. 예전에는 태양이 수면에서 산란했기 때문에 빛이 불규칙해서 무지개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필터 없이 곧바로 따갑게 햇빛이 내리쬐기 때문에 무지개가 생기는 것이었다.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날카로운 직사광선 아래에서, 무지개는 놀랍게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늘에 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어쩐지 즐거운 기분으로, 방주에 탔던 미사일 개발 팀과 함께 '케찰코아'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문명을 전파하고 다녔다. 덕분에 지구는 수백 년만에 기존 문명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후로 세상을 뒤엎을만한 혁명을 보고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 그러니까,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려고 지구를 둥글게 한 거네요."
"그렇지."

"코페르니쿠스란 사람, 멋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하나로 족하단다. 할아버지는 그런 난리가 또 일어나는 건 싫어."

"하지만 하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하잖아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고생하잖니."

"그치만, 헤헤."
"허허."

할아버지는 검버섯이 돋은 자신의 손등을 내려 보았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예전에 대기 중의 물이 해로운 햇빛을 막아주던 시절에는, 이런 병도 모르고 살았을 텐데. 적어도 1000년은 살 수 있었겠지. 아니 한 오백년만 살았으면 좋으련만. 내가 이렇게 빨리 늙게 된 것도 다 코페르니쿠스 탓이려나.

"손자야, 그래도 예전의 지구라면 더 오래살 수 있지 않니."
"그래도 난 지구가 둥근 게 더 좋은 걸!"

인생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빼앗아 간 코페르니쿠스. 그 대가로 나의 수명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어찌 코페르니쿠스를 욕할 수 있으리오. 이렇게 손자가 좋아하는데.

"나도 코페르니쿠스처럼 되고 싶다!"

아무렴,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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