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이 글을 쓰는 필자께서는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하셨을까? 그 아련한 첫사랑,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것으로 이 글은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그것이 꼭 남녀만이 아니라, 처음 소설을 읽었던 날의 두근거림이라던가, 탄산음료를 처음 마시던 때의 느낌, 혹은 난생처음 삼국지를 해보고 게임에 빠지게 된 이야기라던가. 본 필자께서도 처음 음악을 듣기 시작한 계기는 서태지의 '컴백홈'이었다. 서태지를 시작으로 Marilyn manson을 거쳐 Chemical brothers에 이르면서, 어느새 책장에는 책 대신 150여장에 달하는 음악CD가 꽂혀 계셨다. 그 동안 나간 돈이 얼마야.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이는 데쓰메탈을 듣다가 아버지에게 걸려서 '사탄의 음악'이라며 음악CD를 몽땅 불태워 버렸다고 하지. 수업시간에 듣다가 압수당한 후 졸업할 때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하지. 음악을 사랑하기가 이렇게 힘겨웠던가. 만화는 오죽할까. 게임은 오죽할까.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잖아.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아. 사랑하기에 견딜 수 있어. 그렇게 기나긴 학창시절 또다른 괴로운 시절을 견디게 해준 나의 첫사랑, 혹은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순정을 바치게 했던 처녀작. 이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의 마수에 사로잡혀, 한달 생활비를 DVD구입으로 탕진하더라도 "너와 함께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 절대로.." 라는 눈물겨운 대사를 당신의 입에게 나오게 할 당신의 첫사랑은 과연 누구인가. 혹은 누가 될 것인가. 중매쟁이의 마음으로 당신에게 소개하는 참한 애니메이션, 이름하여 후르츠 바스켓. 이 후로 나는 이 사람과 당신을 엮어주기 위해 온갖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 글에 혹해서 사랑에 빠지더라도 그건 내 탓이 아니야. 그것은 운명일지니.
후르츠 바스켓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웃긴 동시에 감동적인 데 있다. 보통의 경우 웃긴데 치중하면 감동이 죽고, 감동에 치중하면 웃기기가 힘든데, 후르츠 바스켓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다. 한창 웃다보면 어느새 눈물이 나고, 무겁다 싶으면 적절하게 개그로 풀어낸다. 이렇게 지루하거나 따분할 틈을 주지 않다보니 어떻게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 뒤에 12지신의 저주라는 개그이자 비극이 있기에 혼란스럽지도 않다. 이성에게 안기기만 해도 쥐나 개 등의 12지로 변한다는 설정은, 옆에서 보기에는 코믹하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가혹한 저주이다. 사실 개그라는 것이 그렇다. 지금은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께서는 이런 적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디너쇼를 하다가 자신의 기구한 인생 얘기를 하는데, 자기는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 관객들은 껄껄 웃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극이 누군가에게 희극이 되는 것이다. 통신에서 인기 있는 개그작가의 글을 보더라도, 잘 보면 자기의 괴로웠던 기억을 즐거운 투로 쓰는 것뿐이다.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더라도, 넘어지는 사람이 즐거워서 넘어지는 것일까. 일단 넘어지는 것을 보면 우습지만, 자칫하면 허리를 삐끗해서 디스크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자기 일이냐 남의 일이냐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갈라지는 희극과 비극의 줄타기를 통해 후르츠 바스켓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시대는 점점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있다. 프로레슬링은 나날이 과격해지고, 쇼프로에서의 MC의 언행 또한 프로레슬링 못지않게 과격해지고 있다. 십여 년 전 MC 김승현씨가 방송에서 ‘섹시하다’는 말을 했다고 징계를 먹었던 과거가 우스울 정도다. 우리가 흔히 순정만화라고 부르는 여성을 위한 연애물에서도 이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젠 베드신 정도는 굳이 18금까지 안 가도 될만한 수준에 속한다. 게다가 연애의 속도 또한 크게 빨라져서, 분위기만 타면 한 회에 A에서 C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후르츠 바스켓은 어떨까. 이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 둘에 여자 하나라는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구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이 끝날 때까지 키스는커녕 손도 안 잡고 다닌다. (가끔씩 잡을 때는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사랑에 불타오르는 초보 커플이라기보다는, 사랑이 식어버린 갱년기의 부부 같아 보인다. 특히 미나와짱 아니 키사짱이 등장하는 편에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기껏 딸이라고 키워서 학교에 보내놨더니 왕따나 당하지를 않나, 그래서 실어증에 걸리지를 않나. 그 고등학생 커플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내가 못살아” 라는 엄마 아빠 같은 대사를 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결혼은 안 했지만 옆에서 보기엔 영락없는 부부 같은 모습, 거기다가 애까지 딸린... 맞다. ‘다! 다! 다!’ (우리 아기는 외계인) 이었다.
그렇다면 그 고등학생 선남선녀들의 연애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연애는커녕 애까지 순풍순풍 잘 낳아서 키우는 것 같으니 말이다. 보통의 연애물의 경우 결혼 후의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다. 결혼하는 순간 그것으로 딱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그것으로 끝이다. 할리퀸 로맨스로 대표되는 여성의 판타지 역시 ‘우연히 만난 백마탄 왕자님에게 화려하게 시집가는 것’일뿐, 그 다음에 남편한테 방망이로 두드려 맞던 어쨌건, 결혼에만 골인하면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남자라고 다를까? 남성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초창기 ‘동급생’이라던가 ‘캠퍼스 러브 스토리’ 같은 게임을 보아도 대부분의 해피엔딩은 히로인과의 결혼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과, 항상 얼굴은 가려져있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보는 것으로 대만족. 그 시점에서 게임 오버였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결혼이 연애의 마지막이라 믿었고,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후르츠 바스켓은 어떨까. 자, 이 시점에서 후르츠 바스켓에 푹 빠진 필자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그는 후르츠 바스켓의 히로인 ‘혼다 토오루’를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너무 귀여워~ 결혼하고 싶어♡” 원래 ‘나디아’나 ‘천사소녀 네티’를 볼 때부터 여자주인공만 보면 그런 비슷한 소리를 하긴 했지만, 신부감으로 지목한 것은 후르츠 바스켓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한다. 나디아는 흑인이라서 안 되고, 네티는 귀여워서 딸 삼고 싶다는데, 똑같이 귀여운 혼다 토오루는 왜 결혼이 하고 싶을까? 도대체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다음달 게임피아를 기대하세요..가 아니라;; 다음 문단에 계속된다.
화상캡쳐에 참고한 페이지 huruba.wo.to
write 2003 03 16
이 글에서 언급했던 "토오루와 결혼하고 싶다던 친구"는 이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리플을 달았다.
나디아랑은 결혼하고 싶다고 한적 없어 ㅋㅋㅋ 흑인이랑은 결혼안해
글구 네티는 딸 삼구 싶당 ㅋㅋㅋ
<가계도>
나 ------------------ 토오루
...............|
.....------------------
.....|........ |..........|
..키사...모미지...네티
모미지는 나이가 너무 많은가?? ㅡㅡ; 너무 어려보여서 ㅋㅋㅋ
아키토씨와 토오루의 오럴 커뮤니케이션.
2001년 애니메이션계를 한바탕 몰아붙였던 화제의 애니메이션, 후르츠 바스켓. 성별과 취향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신사숙녀 모두에게 개그와
감동을 동시에 주었던 소문의 그 작품. 이 작품을 본 후로 tonyx군은 맨날 토오루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등의 심각한 휴유증을 보이기도
했다..;;
난 이정도 되면 우리나라 방송에서 무난하게 틀어줄 줄 알았는데 이게 왠걸.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방송을 금지당했다고 한다. 거참..
이거 자막 찾다가 드나들게 된 홈페이지 -> 에레로아 www.preyja.pe.kr
그 후로 피타텐에 이르기까지 잘 드나들었다. 지금은 주인장이 군대를 간 바람에;;
아 그렇지, 감상을 써야지!
.....
..
....
자세한건 나중에........=3=3=3
write 2002 12 2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위의 제목은 2002년 후반기 듀오의 광고 카피에서 따왔다. 이 광고에 대한 듀오측의 소개를 보자.
"복잡하고 묘한 표정의 여성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 광고는 한 번 마주치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다. 이 광고의 최대 미덕은 바로 이 "찝찝함"에 있다. 사실 듀오같은 결혼중매회사의 약점이 그렇다. 연애가 없다는 것. 사랑이 없다는 것. 그러자 오히려 듀오에서는 당당하게 묻고 있다.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연애가 결혼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결혼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결국 이 광고에서는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광고모델도 예쁘다기보다는 참하다. 연애상대라기보다는 결혼상대로 보인다. 이 점이 광고를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다. 맞아맞아, 결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 해.
마린블루스 2002년 3월 20일자 일기
후르츠 바스켓의 혼다 토오루도 그렇다. 여자 독자를 상대로 한 여자 작가의 스토리인데도 의외로 남자에게 꽂히는 부분이 그렇다. 연애상대가 아니라 결혼상대로 느껴진다는 점.
마침 자꾸 Tonyx가 토오루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던 것도 있고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게다가 대학교 3학년이 되어 곧 군대를 가는 스물 두살의 파릇파릇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연애 한번 못 해본 나로서는, 나도 결국 나중에는 듀오 같은 중매회사의 힘을 빌리게 될 것 같아서, 혼다 토오루 같은 여성에게 뭔가 절실한 느낌이 들어버렸던 점도 있다.
Tonyx만 그런게 아니라, 실은 나도 토오루 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그래서?)
듀오 www.duonet.com
write 2003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