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의 늦은 밤, emule에서 며칠씩 걸려서 받은 퍼니게임을 보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스포일링 해주는거 보고부터 계속 보고 싶긴 했는데, 그땐 아직 미성년자라서 못 보다가 이제 보려고 했더니 비디오가게마다 없다고 해서 별 수 없이 받아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걸. 입이랑 말이랑 묘하게 차이가 나는 걸 보니 더빙판인가 보네. 무슨 ~스와 하는것 보니 프랑스 말 같기도 하고. 전에도 주온 극장판이라고 받았더니 무슨 독일언가 프랑스말인가 더빙된 걸 받아서 황당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러네. 자막 싱크도 안 맞고. edonkey 이쪽에서 받는거는 왠지 더빙판이 많더라고. 전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영어더빙판으로 받질 않나. 하여간에 받긴 했으니 보기 시작했다.
오우 그런데 이거 대단한걸? 흔히 하는 말로 "이거 완전 칼만 안들었지 완전 강도네" 하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들이었다.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싹싹한 강도라니. 그것도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살인만 하는 미치광이.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말끔하게 생겼고 예의도 깍듯해서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옆집에서 갑자기 찾아와도 강도인 줄 모른다. 어찌나 예의가 바르던지 꼼짝 못하고 당할 수 밖에 없다. 당해낼 수가 없다.
나는 앞부분을 보면서 미안한 감정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남에게 "실례지만…"으로 시작하는 실례를 얼마나 많이 저질렀던 것일까.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친절을 베풀었지만 내심 귀찮고 싫지 않았을까. 나도 실은 칼만 안들었지 남의 친절을 이용해 상대방을 울궈먹는 강도 아니었을까? 하여간에 참 그동안 별의 별 일이 떠오르면서 미안했다.
하지만 난 최소한 다리를 뿌러트리거나 옷을 벗기거나 총을 쏘거나 칼질을 하진 않았다고! 이녀석들 이제보니 순전히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농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영리하고 친절하고 약삭빨라서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영화 초반에 강도들은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얘네들 결국 죽어." 보통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죽느냐 사느냐 문제를 중요하게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결론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보라는 소리인가. 단순하다. 처절하게 당하는 모습을 즐기라는 얘기다.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에 나온 개그 하나.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멍청한 녀석들이 비디오 가게에서 공포영화를 고르고 있다. "야, 이건 몇명 죽어?" "그건 3명, 저건 5명." "그거밖에 안 죽어? 더 많이 죽는 거 없어?" …이녀석들은 영화에서 (특히 미모의 여자 주인공이) 죽는 걸 즐기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보려면, 공포영화에서 당하는 쪽에 감정이입을 하면 안된다. 프레디에 감정이입을 하고, 제이슨에 감정이입을 하고, 스크림 가면 쓴 녀석에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자 그리고 외쳐라. "에부리바디 스크림!!!" …아니 이게 아니고;; 외쳐라. "죽어라!!"
영화를 통해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 맘껏 죽여라.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되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원래 처음부터 그러라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퍼니 게임을 즐겁게 감상하는 법은 간단하다. 그 싸가지없는 강도 녀석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것. 그들이 독자를 유도하는 대로 잘 따라가서 무고한 한 가족이 희생되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면 된다. 총질하거나 칼질할때 강도에 감정이입을 해도 좋다. 푹 푹 찌를때마다 아주 그냥 달콤후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것이 무엇이냐. 가학적 재미다.
나는 전부터 이런 쇼프로를 만들고 싶었다. "스타 무단횡단! 8차선 도로 정복기" 같은 것. 어차피 주말 저녁에 하는 쇼프로는 스타 괴롭히기잖아. 그럴 바에 어디 화끈하게 괴롭혀보자고! 안그래도 막 스타들이 무슨 드림팀 같은 거 하다가 부상당하고 입원하고 그러는데. 어차피 입원할거면 화끈하게 교통사고로 하는거야. 스타 무단횡단! 성공이냐 실패냐! 자칫하면 목숨이 날라갈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이것이 성공하면 결식아동을 돕는다!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스타의 눈물겨운 노력! 기대하시라~ 시청률 보장. 도장꽝.
가학적 재미. 괴롭히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그 옛날 사드 백작이 그토록 열심히 주장했던 바지만, 죄책감만 마비시킨다면 괴롭히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그, 코미디라는 것도 "어떻게 하면 죄책감을 마비시키고 가학적 재미를 줄 수 있느냐"는 방법에 불과하다. 보면 부담없이 웃기기가 어려운 거지, 그냥 웃기기는 쉽다. 쉬운 예로 미팅자리에서 한사람을 바보 만드는 것이나, 말끝마다 이자식에 이새끼에 씨발 존나 같은 상대방을 괴롭히는 말을 붙이는 것이나. 용인될 수만 있다면 그토록 즐거운 것이 없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재밌다. 그거야 마조히즘인데 사실 이게 사디즘이랑 같은 거다. 괴롭힘을 당하는 재미는 괴롭히는 재미와 같다. 이 얘기야 어려우니 다음 이시간에 계속하기로 하고…
어쨌든 하여튼. 나는 이런 음…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공포영화라고 했는데 그 말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한없이 가학적이어서, 흔히 엽기라는 말을 듣고, 잘하면 국내 출시까지 안되는 엄청난 것들. 충격적인 것들. 나는 이런 것을 보면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깨끗하게 포맷되는 느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머리속 깊은 곳의 숨겨진 욕구를 대변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스트레스라는 것. 너무 외부에서 압박을 많이 받으면 나도 외부로 압박을 줘서 균형을 맞춰주고 싶다. 그럴때 이런 영화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정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학적인 영화를 보면서 가학적 재미를 찾는 것이다.
음 그러고보니 영화의 주제랑은 한참 멀어진 것 같은데.. 어찌怜?가학적 재미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니 대충 된 것 같고… 연관된 글이라면 전에 귀축물에 대해 말한 것이 있으려나? 아, 그렇구나. 공포영화가 아니라 귀축물이었구나. 음 이제서야 수정하긴 너무 글이 길어졌으니 그냥 냅두고.
아참 이 감독 2001년에는 '피아니스트'라는 영화 찍었대는데, 나는 피아노를 물속에 빠트리는 장면 밖에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여간 거기서도 여자가 된통 당하는 역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결국 큰 구조는 귀축물인 것 같다. (이렇게 막 말해도 되나 -_-;;) 물론 감독이 그렇게 솔직하게 자기 욕구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저런 사회적 주제들로 포장을 했겠지만, 그런 명분 한 가운데에는 분명히 포르노적 재미가 있을테니 많이 기대가 되는걸. 어디 껍질을 잘 까서 안에 노른자위를 즐겨보실까.
write 2003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