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에는 '미역'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워낙 초록색을 좋아하는 탓에 머리도 초록색 옷도 초록색 가방도 초록색 신발도 초록색 하여간에 가능한 모든것을 초록색으로 하고 다녔다. 그래서 별명이 미역이 된 거다. 초록색이니까. 미역도 초록색이라서 좋아했다. 하여간에 초록색을 열라게 좋아했다. (고백하건대 이런 면은 '크림 소다 판타지'의 '크림 소다'라는 캐릭터를 만들때 참고가 되었다)
어느 날은 왜 초록색을 좋아하냐고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친구가 초록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초록색이 가장 눈에 편한 색이라고 하니까. 자연에 가까운 색이라고 하고.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공책에도 무슨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고 초록색으로 나왔고, 원고지도 초록색으로 인쇄된 건 더 비쌌고, 오선지도 마찬가지였고, 컴퓨터 초기에 흑백 모니터 시절에도 초록색으로 글씨가 나오는 건 흰색으로 나오는 것보다 뭔가 더 있어보였다.
2호선의 초록색만 봐도 매트릭스2가 생각난다.
그렇다. 매트릭스의 초록색은 바로 그 컴퓨터 모니터의 녹색 글씨에서 나왔다. 흑백 시절에는 사실 어떤 색깔을 쓰든 상관이 없었다. 어찌怜? 구분만 하면 榮쨉?하필 초록색을 쓴 이유는 눈이 편하라고 했던 거였다. 그런데 자연색에 가깝게 눈이 편하라고 만든 초록색이 어찌 된건지 컴퓨터 모니터에 올라오자 너무도 기계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차가운 초록색. 기계적인 초록색. 그래서 매트릭스에서 가상 세계를 표현할때 초록색 위주의 색감을 써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 색깔배합은 놀랍게도 '아름다운 시절'에서 사진첩의 빛바랜 과거의 추억으로 보이게 하는데도 쓰였다. 초록색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참 초록색은 아이러니한 색이다. 신록의 푸르른 색인 동시에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되는 차가운 금속성의 색이기도 하다. 초록색 신호등의 긍정적인 신호인 동시에 외계인이 흘리는 초록색 피의 징그러운 색이기도 하다.
파워에이드 초기모델 모음. 이중에 현재까지 살아남은건 하늘색 뿐이다.
인기가 없었던 초록색이 '매트릭스맛'으로 재탄생! (키아누 리브스 1.01% 함유)
마린블루스 2003년 6월 11일자 일기
이번에 파워에이드에서 새로나온 매트릭스맛의 초록색도 파인애플,멜론,키위 등 초록색 과일의 맛을 짬뽕시켜 나온 맛이다. 분명히 초록색 과일을 섞어 만든 맛이긴 한데 먹어보면 어찌된게 자연의 맛은 간데없고 인공의 기계적인 금속성의 맛이 느껴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론은 하나다. 원천이 자연이 永?아니永?결국 그 색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색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우리가 평소에 어디서 많이 봤던 경험에 기초해서 색의 의미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푸르른 신록의 아름다움이나 봄나물의 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초록색이 눈이 편한 색이라고 느껴지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초록색의 파장이 과학적으로 눈에 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록색과 연관된 즐거운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초록색을 눈이 편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품 안에서는 작품이 독자에게는 간접경험인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든지 색의 인식을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공감대를 얻어내려면 어느 정도 일반적인 색의 인식에 기대야 하기는 하겠지만, 의도하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도 새로운 색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가 매트릭스의 초록색이다.
지하철 2호선 사진 출처 imagebingo.naver.com/album/icon_view.htm?uid=bbless4u&bno=17005
write 2003 0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