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패닉룸 DVD를 봤습니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였고 특히 카메라워크는 예술이더군요. 왠지 '나홀로 집에'가 연상되는 설정이기는 했지만, 다들 개연성이 있는 범위 내에서 진지하게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정말 숨막히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결말 부분입니다. 가슴을 졸이면서 기다리는 것은 "과연 이들이 강도를 물리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거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실험영화가 아닌 이상 설마 주인공이 죽거나 실패할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어떻게 성공하고 악당이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문제일 텐데요.
예전에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이라는 개그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 보면 마지막에 악당은 항상 무자비하게 죽는다고 나오더군요. 마지막에는 항상 선악의 대결로 몰아넣어 악당이 죽어야만 영화가 끝나기라도 할 것 같은 전개가 되죠. 마치 개그콘서트의 바보삼대 코너에서 더러운 짓을 안하면 코너가 안 끝나는 것처럼 ^^;;;
하지만 악당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영화보다 많이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켓몬스터의 귀여운 악당 로켓단은, 매회 주인공에게 지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마녀 유바바를 잔인하게 죽이면서 끝나지도 않구요. 헌터x헌터 같은 경우는 더 심해서 캐릭터의 선악 구분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패닉룸을 볼때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 흑인 강도 말이에요. 딸 인슐린주사도 놔주고. 여러가지로 상황을 좋게 끝내게 해줬으니까, 마지막에
그 엄마 입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기를 바랬습니다.
"저 사람은 그냥 옆집 사람이에요. 보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흑인과 엄마가 재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결말까지도 생각해봤습니다. ^^;;;
사람이 착하건 나쁘건 범죄를 저질렀으니 죄값을 치뤄야 한다는 식으로 끝나서 참… 정말 저까지 울고 싶어지더군요. 레미제라블의 서두 같았습니다…
그 흑인 강도의 아이는 결국 어떻게 된 걸까요…
정말 삭막한 미국식 결말이었습니다.
write 2003 0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