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B급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있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70년대 미국에서는 영화산업을 진흥하자고, 반드시 동시상영을 하게 했다. 그러면 영화를 많이 상영해야 할테니 영화산업이 활성화되리라는 무식한
탁상행정이었는데, 극장측의 입장으로는 비싼 영화를 2편 틀리는 없을테고. 비싼 영화 하나에 싼 영화 하나 트는 식으로 운영을 한다. 여기서
싼 영화가 속칭 B급영화로, 적당히 사람들이 그럭저럭을 봐줄만하게 제작지 적게 들여서 야하거나 잔인하면 어떤 내용이든 상관안하고 틀어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험적인 성향이 강하던 감독들에게는 일종의 면죄부가 되어서, 에로영화와 호러영화를 빙자한 온갖 실험을 했던 시대가 바로
70년대의 미국이었다. 뭐 그때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던 Rock이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런 붐을 타고, 겉으로는 야하고 잔인한 척 하면서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던 것 중 하나가 록키 호러 픽쳐 쇼였다.
사실 이 영화는 재밌어서 봤다기보다는 유명하니까 교양 차원에서 봐 줬다. 처음에는 보다가 졸려서 껐는데 다시 볼때도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역시 나도 요즘 사람이라 옛날껀 잘 못 보는구나... 예전에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 볼때는 하나도 안 지루했는데 왜그럴까..(이 얘기는 나중에;;)
왜 이 영화 얘기를 꺼냈냐 하면..
이렇게 과격한 실험성을 가진 것들을 아방가르드라고 한다. 아방가르란 프랑스말로 전위부대라는 말인데, 전쟁을 할때 맨 앞에서 와아아 하고
돌진해서 상대방의 진을 흐트러트리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여차하면 총알받이가 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 아방가르드가 없으면 상대방의 진을
뚫지 못한다. 즉 그들이 죽어주어야만 전쟁이 가능한 것이다.
실험적인 예술의 운명도 같다. 그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아방가르드기 때문이다. 뒤의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적진에 파고드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하하.. 옛날에 이런 영화도 있었지." 하면서 그 영화를
참고삼아 작품을 만들어낸다. 충분히 임상실험이 끝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하는 사람들은 성공하지만 처음에 하는 사람들은 실패한다.
아악 지금 달러 멘디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썼더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쓸말은 대충 다 쓴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 끝내기로 하자.
write 2003 0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