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국민학교때 김건모 2집을 무지하게 들은 탓에. 감히 그의 노래를 싫어할 수 있을까. 가창력 또한 장난아니지. 단지 그에 대한 불만은 그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불만일 뿐. 뭐 신승훈씨보고 당신은 왜 허구헌날 발라드만 불루구 자빠졌어 라고 해봤자 신승훈씨가 락을 하겠어 테크노를 하겠어. 아 이 얘기는 집어치우고.
어쨌던간에 그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별 관심없는 가수인 김건모씨의 새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은 주말뉴스에서 남산에 청설모가 나타났다는
소식 만큼이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잊어버릴 아무 가치없는 소식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MBC 음악캠프에서 그의 컴백무대를 본 것은 순전히 다음날 있을 정보처리산업기사 필기시험의 압박 때문이었다. 시험공부의 압박에
시달리던 나는 열심히 농땡이부릴 꺼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오후 4시쯤 TV를 보는 식으로 공부를 안하고 있었다. 마침 공부에 시달리던 탓이라
TV는 엄청나게 재미있었고 별거 아닌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마침 뽀너스로 이승환씨의 무대까지 나오다니 아니 이런 로또같은
일이. 그러다가 덤으로 어쩌다보니 김건모씨 노래까지 듣게 된 것이었다.
먼저 나온 것은 누가 들어도 타이틀곡이라 생각되는 곡이었고, 그 다음으로 나온 것은 누가 들어도 후속곡이라 생각되는 곡이었다. 그 노래의 수준이 어떻든 노래를 잘 불렀든 못 불렀든 내게는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내 귀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흐흐… 이건 바로 나의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였다. 아니 조금 더 앞으로 가서 나의 유치원시절 이야기였다. 우리 아빠는 뭐든지 빨리빨리 먼저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학교도 1년 먼저 보내려고 2년제 유치원에 1년 먼저 보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나는 "정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미술학원 유치부에 1년 있다가 다시 돌아와, 유치원만 3년을 다니게 된다. 뭐 그래서 국민학교는 남들처럼 가게 되었지만. 그 시절부터 내 통지표에는 쓸 말 없으면 정서가 불안하다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문제아였다. 그래서 피아노학원도 보내고 웅변학원도 보냈지만 그게 과연 소용이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될리가 없잖아. 뭐 어쨌건 그 노래 가사는 완전히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노래의 나머지 1분을 나는 완전히 몰입해서 듣게 되었다. 이건 내 이야기다, 내 이야기야… 어흑흑… 김건모씨 당신도 옛날에는 그랬던 거야? 다 이해해… 이해한다니까…
ps. 통지표에 써있는 말 모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주위가 산만합니다" "주변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거. ㅋㅋ
김건모 공식 홈페이지 www.gunmo.com
write 2003 0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