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출판
08/02/08 10:45(년/월/일 시:분)
"먼 북소리(1993)"를 읽다가.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어떤 미국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일본에 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온 사람이었다. "야, 일본 사람들은 모두 여피족이더라" 하고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일본 사회의 어디가 여피 사회 같더냐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JAL의 좌석은 이코노미보다 비지니스 클래스 쪽이 더 많아. 그런 비행기가 있다는 것이 믿겨져? 나는 믿을 수가 없어. 정말 웃기는 일이야. 알맹이라는 것이 없잖아. 그런 건 너무 깊이가 없는 사회라구."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윤리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금박을 두른 이 가짜 계급사회를 여피 사회라고 부른다면, 일본 사회는 지금 분명히 그런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잡지에서 한 젊은 여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BMW의 경우는 700시리즈를 타고 있는 남자하고만 데이트를 하겠다, 500까지는 그래도 봐준다고 해도 300시리즈 같은 것은 초라해서 싫다, 라고. 나는 처음에는 이 말들이 센스 있는 농담이려니 생각했다. 아니면 어떤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복잡한 메시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농담도 메시지도 아니었다. 분명한 진심을 말한 것이다. 그 여자들은 진지하게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봐, 그것은 그냥 자동차일 뿐이잖아, 하고 나는 생각한다. 잠깐 실수해서 핸들을 잘못 돌리면 그대로 전봇대에 부딪쳐서 찌부러져 버리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그 여자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녀들의 존재 위치를 명확히 나타내주는 중요한 공동환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비웃을 수 없다. 나는 이제부터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곳에서 어떤 종류의 발언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무엇에 대해 웃어도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글의 흐름상, 이 부분은 책의 맨 마지막 부분으로, 유럽에서 3년간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왔을때 허탈함을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하여튼
이게 1993년에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다. 한국이 일본을 10년 정도 뒤쳐져서 따라간다고 하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