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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출판

만화 대망 (도쿠가와 이에야스) - 평화주의자의 전쟁법

13/09/29 12:41(년/월/일 시:분)

썰전에서 강용석이 무인도에 갈 때 단 하나의 책만 가져간다면 대망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기니까, 시간 때우기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간만에 흥미가 땡겨서 다 봤다.

원래 대망은 내 친구가 직장생활하는데 도움 많이 될 거라고 선배들에게 추천받아서 읽었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다. 근데 소설은 너무 옛날 문체라 읽기가 힘들어서 만화로 먼저 훑어보자 싶어서 만화를 봤다.

마침 세일을 하길래 5만원에 싸게 샀는데, 사놓고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북스캔을 해서 pdf로 만들어 갤노트에 넣었는데도 도통 읽을 엄두가 안 났다. 그도 그럴 것이, 13권짜리 책에서 4권에 와서야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앞부분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전쟁이 시작되며 4권부터 9권까지는 순식간에 읽었다. 만화 전략삼국지로 유명한 작가라 역시 전쟁을 그리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다가 후반부 가서는 전쟁이 잦아들면서 재미가 떨어졌지만, 읽던 관성으로 끝까지 겨우 밀어붙여서 다 봤다.

다 보고 나니 친구가 대망은 만화보다는 소설이 재밌다는 얘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망은 삼국지보다 심리묘사가 치밀하고 비중이 많은데, 이 작가가 이런 분야에는 많이 약한 것 같았다. 만화 전략삼국지처럼 전쟁이 많은 작품은 무척 뛰어났으나, 대망은 그에 비해 전쟁이 비중이 낮았다.

대망이 일본의 삼국지로 불리지만 또 다른 이유가,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을 극도로 피하고자 했던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에야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다 쓰고, 심지어는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도 할복을 시킨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달콤함도 포기할 수 있다는 극도의 절제심이 이에야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역설적으로, 이에야스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더 많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싸움에서 이겼고, 이긴 후에도 내부 갈등을 줄이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무척이나 소극적인 평화였다.


난 이 대망에서 가장 싫은 것이 인질이었다. 싸우는게 싫은 어른들이, 자신의 자식이나 부인을 상대편에 인질로 보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의 어린시절을 보냈고, 본인이 어른이 된 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편을 인질로 잡았다. 아니 왜 본인도 잘 알면서 왜그랬을까. 그렇게까지 답답하게 평화를 지키고 싶었나?

그 다음으로 싫은 것이 할복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교착상태가 되면, 일본의 무사들은 본인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니 죽을게 뻔한 상황이면 끝까지 싸워보기라도 할 것이지, 왜 굳이 자살을 하나? 게다가 할복도 잘 안됐던 모양이다. 자기 배를 자기가 갈라야 하는데 이게 아프기도 하고 힘도 잘 안 들어가니 한방에 안 죽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라, 옆에서 카이샤쿠라고 대신 죽여주는 걸 많이 썼다.

http://mirror.enha.kr/wiki/%ED%95%A0%EB%B3%B5
할복 - 엔하위키 미러

그래서 이런 인질과 할복이 잔뜩 나오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보니 참 답답한 마음이었다. 중국 것은 훨씬 스케일도 크고 대륙의 기상이 넘치는 대장부들의 이야기인데, 일본은 일단 죽는 사람도 훨씬 적고, 죽어도 뭔가 쓸데없이 죽는다. 뭔가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한 감정이 있다. 평화도 좋지만 울화통 터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hubris님이 좋아하는 몽고를 보고 싶다. 13세기 몽고와 21세기 미국이 비슷하다며, 지금의 한국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내 생각에도 일본에서 배울 점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사람들이 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좋아할까 생각해봤다. 그 전까지 일본의 수도는 나고야였는데, 도쿠가와는 당시 가장 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당시 지방도시였던 에도에 내려가 10년간 엄청난 경제 부흥을 시켰다. 그래서 에도가 지금의 도쿄가 된 것이다. 지금 일본의 수도 도쿄를 만든 장본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물론 우리 한국인 입장에서는 당시 임진왜란의 아픈 기억도 있고, 굳이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 사람을 영웅으로 추앙할 필요가 전혀 없기도 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지만, 일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쨌건 긴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먹고 살만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기에 충분히 고마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망에서 주목한 것은 전쟁과 평화지만, 사실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경제였다. 에도성을 크게 쌓으며 전쟁 실직자를 흡수한 것은 일본판 뉴딜 정책 같았고, 해외 무역을 열어 경제적 실리를 취한 것도 훌륭했고. 농민에게 세금을 40% 이상 걷지 못하도록 하여 서민층의 생활도 안정화시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말년에 임진왜란으로 고생하는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변두리 도시에서 전쟁을 피해 조용히 경제를 키웠던 것이었다.

결국 나라를 키우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결국에는 경제 성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서민들의 입에 쌀밥에 고기국을 먹이는 사람이 어찌됬건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는게 아닐까 싶다. 나머지는 어디까지나 그 다음 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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