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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인물

사람들이 김기덕을 싫어하는 이유

06/08/18 04:33(년/월/일 시:분)

이유는 간단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심하게 불쾌하다. 한번 보면 한 일주일은 기분을 잡친다. 아무래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더라도, 그 불쾌함을 알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나는 고3때 '섬'을 시작으로, '나쁜 남자', '수취인 불명',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를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빈 집'은 DVD 대여점에서 빌려서 봤다. '해안선', '파란 대문', '악어' 등 아직 안 본 영화가 많지만, 번번히 대여점에 갈 때마다 봐야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결국 안 본다. 나는 처음 접했던 그 불쾌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 그때는 2000년으로 다들 월드컵 예선전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고3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축구를 보러 갔고, 학교에서도 이를 막지 않았다. 나는 그때를 틈타, 화장실에서 미리 준비해간 사복으로 갈아입고 '섬'을 보러 극장에 갔다.

내가 '섬'을 보게 된 건 TV 영화프로에서 우연히 본 그 장면, 낚시바늘을 꿀꺽 삼키는 장면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영화 불감증에 빠져서 자극적인 영화만 찾아다니던 시절이었고, 그 연장선 상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나는 국내에 수입 금지된 아주 선정적이고 잔인한 영화들, 예를 들어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 '네크로맨틱' 같은 영화를 인터넷으로 구해 보는데 푹 빠져 있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의 신분이라, 연소자 관람불가인 '섬'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고3이면 만 18세는 넘을수도 있어서 애매하던 시절이었다. 후에 연소자의 기준이 만 18세에서 그냥 19세로 상향 조정되면서 문제는 없어졌지만, 그때는 애매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물론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 17세였던 때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를 믿고 도전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극장은 아주 한산했다. 나는 처음에 극장 문을 닫은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히 '섬'이 상영중이었다. 나는 신분증 검사도 받지 않고 유유히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극장에는 심지어는 다음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찌나 조용하던지 상영중인 영화의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나오는 것 조차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마침내 앞 시간의 상영이 끝나고 극장 문이 열렸다. 나는 그렇게 텅빈 극장을, '산전수전' 이후로 처음 봤다. 한 4명 정도의 사람이 그 넓은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마치 혼자 보는 듯한 기분으로, 충격적인 장면에서조차 너무 극장이 조용해서 맘껏 소리를 지르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게 영화를 봤다.

그렇게 한창 시절에 본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한 일주일을 내내 영화 생각만 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으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윤리 도덕 같은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게 만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아주 불쾌했다.

그 후, 섬이 개봉한지 불과 두달만에 또 나온 영화 '실제상황'은, 그런 영화가 나온지도 모른 사이에 끝나버렸고, 후에 대여점에서 빌려보려 했으나 아무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도 구할 수가 없었다.

다음해, 대학교 1학년때 나온 '수취인 불명'은 다행히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이번에도 개봉한지 1~2주만에 막을 내릴게 뻔하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개봉날, 그것도 CGV 조조(무려 오전 8시에 시작하는 가혹한 조조할인)로 4천원에 봤다. 그러니까 개봉하자마자 본 거다.

영화야 언제나 그렇듯이 아주 불쾌했고, 한 일주일은 내내 기분이 꿀꿀할 것 같은 건 여전했는데, 영화관 스코어에 아주 기록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첫 회 매진. 아니 김기덕 영화가 매진사례라니!

물론 당시 논스톱으로 인기있던 양동근 때문이기도 했겠고, 김기덕 감독 팬이라면 가장 먼저 보고 싶기도 했겠고, 나처럼 빨리 안 보면 아예 못 볼 거라는 위기의식도 있겠고, 그 정도 열성이라면 CGV 조조할인이 무려 4천원밖에 안 한다는 걸 놓치기 싫었던 것도 있었겠다. 애초에 CGV 강변에서 가장 작은 관에서 상영한 탓도 있었겠지만. 물론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런 '매진'이라는 빨간 글씨를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다.

그 후로 '나쁜 남자'를 봤고(그때 난 '피아노'를 보지 않았다. 나중에 일부러 챙겨서 보려 했으나 1화 보고 관뒀다), 설마 한 해에 영화를 두 편이나 개봉할 줄은 모르고 '해안선'을 놓쳤다. 그래도 다음해에는 놓치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봤고, 그 후로 군대 갔다. '사마리아'는 일부러 휴가 날짜까지 맞춰가면서 봤지만, '빈 집'은 놓쳐서 DVD로 빌려 봤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김기덕 영화의 전부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호러, 고어, SM 영화의 연장선 상에서 그의 영화를 봐왔다. 일본 포르노 중에서는 귀축물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김기덕 영화는 아주 자극적으로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여자,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할만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포르노를 싫어하는 이유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나는 대학교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성인물을 가지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 봤는데, 같은 성인물이라더라도 잔인한 건 용납하지만, 야한 거는 용납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사지가 뜯겨져 나가는 '피바다학생작품집'은 용납할 수 있어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벙개벙개'는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손을 자르고 혀를 자르고 망치로 이빨을 뽑는 '올드 보이'는 용납할 수 있어도, 좋아하는 여자를 창녀로 만드는 '나쁜 남자'는 용납할 수 없다. 그게 한국의 정서다.

나는 혹시 그것이 포르노에 깊숙히 박힌 마초이즘 때문인가 싶어서, 일부러 여자 작가가 그린 남성용 포르노 '벙개벙개', 아예 여성향 포르노인 '애인(유키 요시하라)' 등을 시도해 봤으나, 결과는 만화책에 휘발유를 붓고 불태워 버릴 정도의 극단적인 대응 뿐이었다. 즉 그게 남성의 욕망이던 여성의 욕망이던 상관없이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김기덕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즉 사람들이 김기덕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욕망에 너무 솔직하기 때문이다.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검열을 떠나서,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한국에 안 통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 주에, 어쩌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가 될 지도 모르는, '시간'이 개봉한다. 그가 원하는 20만 관객이라는 수치는, 개그콘서트에서 항상 놀림받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의 40만 관객보다도 낮고, 한국의 극장 애니메이션 몰락을 가져온 '원더풀 데이즈'의 30만 관객보다도 낮다. 그런데도 그 20만을 못 넘긴다.

하긴 나도, 김기덕의 팬이면서도, 그 불쾌함이 자꾸만 떠올라서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할 정도니까,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냐 싶다. 나도 한국사람은 한국 사람인가봐. 도대체 외국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영화를 뭐가 좋다고 그렇게 보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한국에 대한 환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에 보면 두 여학생이 사이좋게 족발을 뜯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다리 통째로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다. 그것도 공원에서. 나는 이게 하도 궁금해서 디렉터스 코멘터리를 들어봤더니, 김기덕의 의도는 단순히 '원래 여학생들이 족발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느냐' 는 것이었다. 와 정말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 하나도 안 쓰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외국 관객들은 여학생들이 통족발을 뜯어먹는걸 보면서 "아~ 한국에서는 원래 저러는구나." "뭔가 족발에 깊은 뜻이 있을꺼야." 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보니 감독상도 주고 그런 게 아닌가 모르겠다.

즉 김기덕에 대한 외국의 후한 평가는 오리엔탈리즘의 환상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족발 같은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다보니 얼떨결에 해석이 맞아 떨어져서 과대평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아직도 김기덕 영화를 호러 영화나 귀축물의 연장선 상에서 보고 있고, 아주 순화된 표현으로 관객과의 화해의 제스처를 날리는 최근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검열이라고 생각한다. 영등위에 의한 검열이 아닌, 관객에 의한 검열. 한국 관객은 아직 성적인 욕망에 솔직해질 준비가 안 되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했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 '네크로맨틱' 처럼 수입 금지되서, 내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어둠의 루트로 구해 보는 영화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386

  • 태공 06/08/18 05:29  덧글 수정/삭제
    이빨을 뽑고 손을 자르는건 잔혹하지만 현실감은 없어도
    좋아하는 여자를 몸파는곳에 팔아버린다는건 현실감이 있어보이잖아.(굳이 비교를 하자면)그 기묘한 현실감각에서 오는 불쾌함이 올드보이랑은 다른 불쾌함이지
    그리고 김기덕은 너무 스트레이트적으로 쏴붙이고 마초적이야.
    여성을 꾸욱 내리 누르려고하면서 여성에게 구원받으려하는게 왠지 참으로 못나보인달까-_-...
    또 벙개벙개'나 애인'의 성적인것은 김기덕과는 다른계열이라 보는데...[참고로 난 둘다 재밋게 보았다만]
    • xacdo 06/08/18 11:27  수정/삭제
      무슨 소리. 박찬욱 감독은 폭력의 오락성을 극도로 배제한다구.
      그리고 벙개벙개, 애인의 선정성과 김기덕의 선정성은 한참 차이나지만,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증거로 케이블TV 영화채널 심야 시간에는 김기덕 영화가 아주 즐겨 방송되고 시청률도 꽤 나오는 편이지.

      http://zaigen.egloos.com/1336340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영화관에서는 개죽을 쒀도, 새벽이면 벌떡 벌떡 잠을 깨는 성인들이 즐겨 볼만한 채널의 편성표에서는 완전 인기짱인 모양이다. 케이블 방송국 직원들도 나름대로는 보통내기가 아닌 장사치들일텐데, 새벽에 잠 안자고 지켜보는 시청자가 제법 되니까 해를 거듭하며 틈만 나면 계속해서 편성하였을 것이다. 그의 새 영화는 숫제, 돈이 없어 극장 개봉조차 못하고 있는 서글픈 판국인데, 그의 영화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악명 높았던 이 영화는 너무 많이 봐서 지겹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아닐 수가 없다. 요모조모로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한국의 영화 관객들이다. 괜히 CGV 탓하지 말자.
  • Jungen 06/08/18 06:59  덧글 수정/삭제
    '불쾌함'과 '역겨움'의 측면에서 영화를 본다면 김기덕씨의 영화 외에도 <구타유발자들>도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한국 관객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점, 대상의 추악한 면을 최대한 부각시켜서 관객들의 '불편함'과 '역겨움'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는 전자나 후자나 별반 다를게 없으니까요.
    • xacdo 06/08/18 11:29  수정/삭제
      '구타유발자들'은 그나마 폭력이니까 받아들여지는 편이지만, 김기덕은 사랑, 성적인 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거죠. 이 둘은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자체로는 별반 다를게 없다 하더라도 관객이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 버트 06/08/18 16:06  덧글 수정/삭제
    최근에 올불에서 본 가장 근사한 포스팅입니다!!! 김기덕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라고 그래도 말할 수 있는 축에 드는 분 같군요. 저는 극장에서 그의 영화를 거의 보지 못했기에, 최근의 논란에 대해선 함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겐짱.. 06/08/19 00:07  덧글 수정/삭제
    벙개벙개 문제는 일부의 개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난 재미있게 봤걸랑.. 솔직히 시마과장이랑 수위의 차이도 그리 없고..)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극장에 오래 걸수 없는 이유는..
    연인 혹은 가족단위의 관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p.s 의외로 토론에서본 김기덕은 말을 잘 못하더라..
    • xacdo 06/08/19 01:21  수정/삭제
      김기덕은 어수룩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 如水 06/08/19 00:41  덧글 수정/삭제
    저도 기분 나쁜 영화는 좋아하는데
    성적인 것에 대해서
    홍상수 감독의 조롱은 참아도
    김기덕 감독의 후비파는 건 못 참겠더라구용...
    • xacdo 06/08/19 01:23  수정/삭제
      그게 김기덕의 매력이자 한계죠.
      홍상수 영화는 김기덕에 비하면 가볍게 볼만하죠 후후.
  • sdds 06/08/19 08:22  덧글 수정/삭제
    올블에서 흘러왔는데, 원츄원츄!!
    정확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써주셨네요^^
  • youngmi 06/08/19 12:10  덧글 수정/삭제
    자신이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들이 그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취향이 타인들에게도 고르게 적용되어야 하는 척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한국인들이 극단적으로 싫어한다고 하는 근거는 뭔지?
    김기덕 영화의 충실한 팬들은 소수의 취향일뿐이여서 어줍잖게 여기는건가요.
    좀 넓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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