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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북유럽 여행기 3 - 노르웨이 오슬로, 베르겐

11/01/04 14:18(년/월/일 시:분)

1. 내가 북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박노자 교수 때문이었다. 한동안 블로그 글을 즐겨 보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복지와 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말하는 북유럽 복지사회주의 국가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그런 나라가 세상에 가능하기나 할까? 여러 경제적 자료를 찾아봤지만 잘 와닿지가 않았다.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느낌은 어땠냐 하면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2. 오슬로 조각공원의 강인하고 가족적인 남자 여자들을 잔뜩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 4시 정도 되니까 어둠이 깔리면서도 아직 밝은 느낌이 마치 마그리트 '빛의 제국' 같았다. 마그리트가 북유럽 겨울을 보고 그렸을 거라는 데 100원 건다.

하여튼 오는 길에 우연히 어떤 갤러리가 무료 입장이길래 그냥 들어가봤다. 들어갔더니 류샤오보 사진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중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사진들도 많았다. 류샤오보 신문기사도 잔뜩 스크랩했고, 곳곳에는 류샤오보의 젊은 시절 영상, 아내의 인터뷰, 노벨 평화상 시상식 영상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갤러리 2층은 아프리카 소녀의 암울한 현실이 체험학습 형식으로 재미있게 꾸며져 있었다. 나의 작은 도움으로 이 소녀의 생활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될지 등을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곳은 노벨평화상 박물관이었다. 그것도 무려 오슬로 시청사 바로 앞에, 오슬로에서 바다가 보이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으리으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매우 정치적인 전시를 무료로 하고 있었다.

3. 뿐만이 아니다. 12월 31일 밤, 일본이라면 한창 홍백전으로 하고 있을 시간, 노르웨이 TV에서는 노벨평화상 콘서트를 했다. 왠 입 크고 눈 큰 여자가 영어로 말한다 싶더니만, 앤 해서웨이가 먼데까지 가서 사회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많이 늙은 자미로콰이도 나오고, 그 외에 잘 모르지만 어쨌든 꽤 음악계의 거장일 것 같은 사람들도 많이 나왔다. 앤 해서웨이는 그 큰 입으로 10분마다 나와서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했다. 영어로 또박또박. 그러는 것이 그녀 다웠다.

이 나라는 참으로 정치적인 나라구나 싶었다. 국기 색깔도 핀란드, 스웨덴과 달리 빨갛고 파란 것이 공격적으로 보였다. 영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지만 노르웨이 국기도 강해보였다. 왠지 핀란드의 파랗고 하얀 색으로 보면 오랫동안 정복당했을 것 같은 유약함이 보이는데, 노르웨이 국기를 보면 남의 나라 몇 개는 정복하고 무릎을 꿇게 했을 것 같은 폭력성이 느껴진다.

노벨이 다른 상은 몰라도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에 맡긴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노벨 평화상은 확실히 매년 이슈를 만들고, 정치적인 힘을 가진다. 중국이 위협을 한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지도 않다.

4. 송네 피오르드 라던가 베르겐 같은 여유로운 곳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았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살 만한 동네가 아닌데, 이상하게 작은 집들이 많고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 중 70%는 노인이고, 나머지는 배낭을 맨 우리같은 여행객이었다.

피오르드에서 딱히 돈이 벌리진 않을 텐데, 아마도 노르웨이의 뛰어난 복지정책으로 연금을 타면서 한적한 시골에서 피오르드나 보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새삼 나도 연금을 꼬박꼬박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5. 젊은 애들은 도대체 다 어딜 갔나 했더니, 밤이 되니까 나타났다. 1월 1일 새벽에 자는데 밖이 시끄러워서 봤더니, 아까 낮에는 안 보이던 젊은 애들이 새해가 되니까 좋다고 폭죽을 터트리고 술마시고 떠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창문을 열고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가 새벽 3시였다. 아니 내일이 새해라고 오후 3시에 버거킹이 닫는 나라이지만, 그래도 젊은 애들은 좋다고 거리에 나와서 술마시고 소리를 지른다. 젊은이들은 어딜가나 똑같구나 싶었다.

즉 북유럽의 한적하고 여유롭고 정치적인 성향은 훈련된 것이고, 이 나라에서 오래 산 노인들의 학습되고 만들어진 성격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애들까지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베르겐에 딱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나이트클럽은 마치 홍대클럽처럼 발디들 틈 없이 붐볐다. 이래서 술이나 마실 수 있을지, 춤이나 출 수 있을지, 완전 출근길 강남역 지하철이 따로 없었다. 그 좁은 문 틈으로 멀리까지 경쾌한 미국 음악이 울려 퍼졌다.

6. 노인들은 일찍 자고, 젊은애들은 술먹고 밤을 새는데, 그 와중에 근면한 아시아인들은 고맙게도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었다. 베르겐에서 먹었던 따뜻한 중국음식은 여행에 지친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새해 연휴라서 문 연 곳이 중국 식당, 인도 식당, 케밥집 뿐이었다. 근면성실한 아시아인 화이팅!

7. 이러니 박노자 교수가 한국에 매력을 느낄 만도 하겠다. 이렇게 활기차고 정이 넘치고 재미있고 신나는 나라인데. 그와 동시에 답답할만도 하다.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굴 줄 몰라.

요즘 박노자 블로그가 급격히 재미가 없어졌다. 아무래도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영 말도 안되는 쪽으로 가고 있고, 스스로도 무력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오히려 정치적 성향이 안 맞는 민주당 쪽이 나름 진보 집권 플랜도 잡고, 무상급식 이슈도 잡고, 후보 단일화 등 훨씬 영리하게 움직여서 질투가 나는 탓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박노자씨처럼 정치적인 인간이라면 차라리 정치가가 되는 쪽이 좋을 법 한데, 내가 보기에는 그가 교수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 답답함이 더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학 교수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고, 박노자씨처럼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게다가 북한도 남한도 자꾸만 관심을 받으니 그를 찾는 사람이 꾸준할 수 밖에.

만약 그가 정치가가 된다면, 교수로서의 객관성을 포기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박노자씨는 아마도 교수로서 자문역이 되고 싶을 테지만,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자문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불만은 해소될 수 없고, 결국에는 투덜이 교수님이 될 것이다.

8. 북유럽까지 와서 박노자 생각이나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

말은 이렇게 했어도 북유럽의 겨울은 꽤나 볼만합니다. 스키도 탄다면 금상첨화겠어요.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160

  • dawnsea 11/01/05 00:11  덧글 수정/삭제
    저도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하고 한겨레 21 컬럼등을 보고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죠.. 헌데 지적하신바와 일맥상통하게.. 한계는 명백해요. 로맨티스트에 평화주의자, 이상주의자 노선을 고수하기 때문에.. 근데 그게 또 그 분의 매력이라.. 저는 뭐 변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다 자기 역할이 있는 법이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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