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1/01/04 13:30(년/월/일 시:분)
1. 스웨덴은 핀란드보다 더 미국스러웠다. 맥도날드, 버거킹, H&M, ZARA....
2. 스칸센에 가서 동화같은 옛날 스웨덴 모습을 구경했다. 집 하나하나마다 연기자가 살고 있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나... 나는 그만 뻘쭘해서 하이~ 바이~ 만 하고 나왔다.
저런 분들이 하루 종일 이 좁은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겠지. 아침에 저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탈의실에서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각자 일터로 하나둘씩 흩어지겠지...
어쨌건 스웨덴의 옛날 모습은 정말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유럽풍의 동화속 마을이었다. 디즈니랜드, 롯데월드 등 수도없이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3. 다음으로는 갑자기 일정을 변경해서 이케아에 갔다. 이번 여행은 솔직히 관광지를 둘러보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요즘 북유럽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현대의 모습을 보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그렇다면 이케아지! 라고 급하게 결정해버렸다.
마침 전날 핀란드에서도 아라비아 핀란드라는 주방용품 아웃렛을 갔다오기도 했지만, 핀란드에서 이케아를 가려다가 너무 피곤하고 시간이 안 맞아서 안 갔던 터라 아쉽기도 했다.
4. 이케아 매장은 스톡홀롬에서 20~30분 정도 거리의 교외에 있었다. 셔틀버스를 운행했지만 잘 찾지를 못해서 지하철과 버스로 갔다. 역시 이런 대형 할인 매장은 서울에서 20~30분 거리의 약간 한적하고 교통이 조금 불편하지만 땅값은 싼 동네에 짓는 것이 제격이다.
사실 그런 면으로 볼 때 한국의 동남권 유통지구, 가든 파이브도 지금처럼 약간 고급 상점보다는 이케아처럼 큼직하고 저렴한 할인매장이 생겨야 했을 위치가 아니었을까... 서울에서 20~30분 거리에 약간 교통이 불편하고 땅도 넓직하잖아.
5. 하여튼 이케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스웨덴의 몇 안되는 전통 요리 중 하나인 미트볼을 먹은 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고작 미트볼이 전통음식이라니. 이래서야 미국의 전통 음식이 햄버거라는 거랑 뭐가 달라.
이케아 미트볼은 마치 코스트코 피자처럼 싼 값에 잔뜩 배부르게 먹이고 "자, 이제 쇼핑을 해볼까? 잘 먹었으니." 이런 느낌이랄까. 값은 매우 쌌지만 나름 재료는 충실했고, 그렇지만 결국에는 정크 푸드였다.
어쨌든 이케아 미트볼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봤자 오뚜기 3분 미트볼이랑 그렇게 큰 차이도 나지 않았다.
6. 이케아 매장은 매우 재미있었다. 이케아의 성격은 침대, 소파만 봐도 알 수 있다.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완전 싸구려다. 이쁘긴 한데 막상 누워보면 완전 불편하다. 이래서야 수백만원씩 하는 에이스 침대, 시몬스 침대 같은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내구성도 떨어진다. 한 1년만 쓰면 몰라볼 정도로 닳아 빠진다. 마치 유니클로 옷이 그럴듯해 보여도 내년에 다시 입기는 어려운 것처럼, 이케아도 가구를 일회용품화 한다. 사실은 그 점이 대단하다. 멋진 싸구려. 센스있는 싸구려.
완전 싼데다 종류가 워낙 많아서, 인테리어 덕후들이 쏟아져 나올만 하다. 어차피 얼마 하지도 않으니 맨날 바꾸며 실내를 꾸며도 되겠다. 이번엔 빨간색으로 해볼까? 아니야 이제는 질렸으니 검은색으로 가보자... 이렇게 하나 둘씩 사 모아도 이 정도 가격이면 크게 부담이 안될 법 하다.
7. 놀랜 것은 그림도 판다... 그것도 적당히 지명도가 있으면서 너무 클래식하지 않은 그림들을 고퀄로 잔뜩 찍어다가 적당한 가격에 판다.
게다가 인형들이라던가 무늬들도 은근 이케아 오리지널이다. 적당히 남의 캐릭터 박아다가 싸게싸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재료는 싸구려라도 스타일리쉬한 싸구려가 되는 것이다.
8. 그래, 처음 한시간까지는 재미있었다. 디스플레이도 정말 잘해놨고, 구색도 다양했다. 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이렇게 만들었어 싶었다. 근데 그것이 두시간이 되고, 세시간이 되자 지쳐버렸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볼 게 남았다.
역시 이케아 본사 매장 답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난 세상에 가구를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다. 정말 토할 정도로 많았다. 월마트 같았다. 이케아는 그런 면에서는 미국적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미국적인 나라가 스웨덴이 아닐까 싶다. 스웨덴에 미국 브랜드가 많기도 했고, 스톡홀름에서 슬쩍 보았던 거리의 모습도 전형적인 미국 뉴욕 대도시의 느낌이었다. 물론 잠깐 본 것에 불과했지만, 잠깐 보기에는 그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