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0/03/21 21:58(년/월/일 시:분)
남자보다 여자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사람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남자는 결혼하거나 출산을 해도 다소 좀 나몰라라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자는 아무래도 자기의 몸이 10개월이나 큰 변화를 겪고, 자기 몸에서 핏덩이가 나오다보니 신체적인 측면에서도 더 큰 책임감을 느낄 것 같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싱글맘의 육아일기를 올리는 네이버 웹툰의 일상날개짓을 보면.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55143&no=122
122화 태어나기 전에
100화가 넘는 연재기간동안 남편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을 보면 일부러 의도한 것 같다. 남편이 없이도 조금도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씩씩하게 키우겠다는 억센 다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주인공 엄마도 다소 무리를 하면서까지 화목한 가족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122화 같은 경우에는 암시적으로 남편(물론 결혼을 안 했다면 남편은 아니겠지만 편의상 남편) 쪽에 대한 대단한 실망이 언뜻 보인다. "쓰디쓴 인생이란 술에 취해 철없이 비틀거리던 주정같던 지난 날"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싱글맘이 된 것도 피임에 실패하거나 장기적인 가족계획 없이 얼떨결에 애가 생겨버렸고, 거기에 남자가 책임감 없이 행동하거나 혹은 무책임하게 낙태를 시키려는 것에 실망해서 "그럴 바엔 내가 혼자 키우겠다!"고 해서 싱글맘의 육아일기가 시작한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본다. (ps. 아니라고 합니다. 이혼하셨다네요.)
그렇게 다소 불행하고 무척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작한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애를 키우면서 모성애도 생기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생기고, 애가 오히려 엄마를 성숙하게 했다고 느낀 것 같은데. 이렇게 애를 키운다는 것이 여자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이런 억센 엄마, 억척스런 엄마 캐릭터는 흔하지 않나? 그렇지?
여자가 폭삭 늙는 시점이 딱 이때가 아닌가 싶다. 그 전까지는 별 생각없이 살다가, 그래도 나를 위해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애도 가졌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남자가 생각보다 책임감도 없고, 애는 낳아놓고 나한테 전부 전가하고 내팽개치고, 심지어는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해서 생활비도 간당간당하고, 그렇다고 이제와서 결혼을 물르기에는 너무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도 많고(사회적 관계), 집세도 내야 하고(주거비), 쌀도 사야 하고(생활비), 분유도 사야 하고(양육비)...
그러다보니 어떻게 대충 시장통에 나가서 배달이라도 하고 버스 운전이라도 하고 길거리에 나앉아서 돈이 별로 되지도 않는 반찬거리를 판다던가 하는 억척스러운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게 아닐까.
그래서 정말 몇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는데,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맨날 술타령에, 되도 않는 지름으로 생활비를 낭비하지 않나, 애한테는 관심도 없고. 나는 이렇게 삶이 무겁고 버거운데 너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이 좁아터진 집구석이 답답하기만 하고, 그저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데, 그나마 나를 반기고 웃어주는 애새끼 하나가 있어 그나마 버틴다... 이런 선녀의 슬픈 날개옷 같은 존재가 자식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어느날부터는 화장도 하지 않고, 화장을 하지 않고 일하러 갔는데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그 다음부터는 머리도 안 다듬고, 옷도 안 사입고, 그냥 되는대로 대충대충 살고, 그저 애 똥기저귀나 치우고, 애 울면 안아서 달래고, 애가 크니까 어디 태권도 학원이라도 보내고, 근데 거기서 다른 애들보다 좀 잘하고, 그러니까 나도 기쁘고...
그러다보니 여자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자식에게만 쏟는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실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 급격히 삶에 찌들고, 표정에 온기가 없고, 패션이나 몸매 관리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매력을 잃어버린다...
아... 안돼...
나는 여자가 결혼이나 출산을 겪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지라도, 이런 무거운 인생의 짐이 여자를 인생에 찌들지 않게 하고 싶다. 물론 결혼생활이나 육아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자식에게만 쏟는 것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고, 충분히 장기적인 가족계획을 세우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있고, 특히 무엇보다도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불행할 때 든든하게 버텨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러면 남자가 찌들잖아...
딱히 꿈도 없이 대학생활을 하다가 얼떨결에 적당한 회사에 들어갔다. 설렁설렁 대충 1주일에 20시간만 들으면 됐던, 그나마도 날씨 좋으면 놀러가고 날씨 안 좋으면 빠졌던 널널했던 대학생활과는 달리, 이건 뭐 1주일에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넘어서 60시간 80시간 마구 일하는 무시무시한 곳에 들어와버렸다.
하루종일 일하기에 바쁘고, 그나마도 귀중한 주말은 직장 동료 결혼식에 술자리에, 반강제 봉사활동에, 재미도 없는 등산 동호회 활동에 끌려다니다보니 정말 거실 소파에 늘어져서 TV 볼 시간도 나지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이 회사에 끌려다닌다.
그런데 집구석에 오면 내가 먹여살리고 연애할땐 그렇게 예쁘장하기만 했던 아내가 이제는 나를 괴롭힌다. 그 별로 어렵지도 않아보이는 살림, 육아가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무슨 시부모님 대하기가 어렵다 엄마 보고싶다 차태워달라 그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나를 괴롭히고.
주말에는 그래도 피곤한 몸을 쉬고 싶은데, 왜 게으르게 누워서 TV만 보냐, 청소해야 된다 일어나라고 구박하고... 맘 같아서는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고생하는가 하나하나 말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집에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나는 그저 집에서는 쉬고 싶은데 집도 쉴 곳이 아니고... 그러다보니 차라리 회사에서 늦게까지 남아서 쉬고 만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은 막중해지고 아내에게 못할 말은 늘어간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으니 회사는 계속 다니지만 이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난 꿈도 없었고...
아... 안돼....
출근시간이 다 되어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