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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름 손난로

14/11/19 06:43(년/월/일 시:분)

날씨가 추워지니까, 군대시절 썼던 기름 손난로가 생각난다.

우리 부대는 사람이 적어서 거의 매일 밤마다 야간 근무를 나가야 했다. 도대체 왜 여기를 지켜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아무도 오지 않을 외진 초소에서 매일 밤마다 1시간 반씩, 중간에 잠을 끊고 추운 바깥에 나가서 근무를 서야 했다.

내가 있었던 강원도 원주는 겨울에 보통 영하 7도 정도까지 내려가는데, 꼭 딱 3일 정도는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는 날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리 껴입어도 30분만 지나면 온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숨만 쉬어도 코 안쪽까지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었다. 그 차가움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다들 핫팩을 몇 박스씩 사놓고 썼는데, 이 일회용 핫팩의 문제는 일단 데워야 뜨거워진다는 것이었다. 너무 추우면 아예 따뜻해지질 않는다. 적당히 추운 날에는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너무 추운 날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기름 손난로를 샀다. 이것은 천천히 타는 지포 라이터 같은 것인데, 일단 불을 붙이면 아무리 추워도 식지 않았다. 기름을 충분히 채우면 하루종일 써도 충분했다.

매일 밤 근무를 나갈 때마다, 관물대에서 기름을 꺼내서, 딱 1시간 30분만 탈 만큼 기름을 채워넣고 근무를 나갔다. 별도의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기름 타는 냄새가 기분 좋게 깔깔이에 스며든다. 그 훈훈함으로 굳은 몸을 이끌고 근무를 나갔다.


가끔 무척 추울 때, 그 기름 타는 냄새가 그리워진다. 내 품 속에서 아주 천천히, 기름 쩐 내를 옷에 잔뜩 배기며 타오르던 기름 손난로의 훈훈함이 여전히 선명하게 머리를 스친다.

물론 이제와서 그런 구식 손난로를 쓸 이유야 전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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