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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말레이시아 총선을 보고

13/07/24 06:38(년/월/일 시:분)

얼마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이른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거기서 가장 비싼 리조트인 샹그릴라를 갔는데,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근데 마침 거기도 총선이었다. 거기도 대충 보니까 보수 대 진보의 싸움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진보 세력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노리고 있었다. 보수 대 진보가 42% 대 41%의 팽팽한 박빙이었다.

근데 말이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박빙이 박빙처럼 안 보였다. 우리 한국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듯이, 보수 대 진보가 이렇게 박빙으로 싸우면 당연히 보수가 이긴다. 오바마 재선때처럼 진보에게 너무 쉬운 싸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당히 앞서나가야 겨우 간발의 차이로 이기지 않는가.

보수 쪽의 상징은 정의를 상징하는 천칭저울이었는데, 다민족 다언어 국가다보니 언어가 아니라 상징으로 홍보를 많이 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새파란 천칭 그림을 지저분할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길거리의 차들도 천칭 깃발을 꽂고 다니고 심지어는 사이드미러에도 천칭 커버를 씌우고 다녔다.

가장 혀를 내두른 것은 신문이었다. 호텔 로비에 비치된 말레이시아 현지 영자 신문을 봤는데, 아마도 보수의 대표로 보이는 분이 아주 인자한 얼굴로 대문짝만하게 뭔가 추상적인 구호를 내걸고 있었다. 그러면서 후속 기사들은 진보쪽 인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뭔가 여유가 없고 잔뜩 화난 얼굴로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진이 실렸고, 이에 대해 보수쪽 대표는 이들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논평을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http://pic.twitter.com/q9DqGHvnwk

조선일보에서 흔하게 보던 상징조작이었다. 나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선거결과를 확인해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나는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이 단지 한국에만 국한된 답답한 후진적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를 보면서, 이게 예상외로 글로벌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법이 너무나 비슷했다. 엄청 많이 보던 것들이었다.

아시아에서 예외적으로 진보가 집권했던 나라가 태국 정도인데, 사실은 여기도 상황이 썩 좋진 않았다. 왜냐하면 진보 세력이 군부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집트도 마찬가지지만 진보와 군부가 연합하면 혁명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태국은 지난 20년간 혁명이 20번이나 일어났다. 이집트도 엄청나게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나는 진보가 집권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모델은 싫다.

근데 그 외에는 진보가 집권하는 경우를 매우 찾기가 어렵다. 특히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예외가 없다. 게다가 설령 진보가 집권한 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탁신을 그리워했다. 설령 부패했어도 진보 특유의 풋맛을 견딜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 그리움은 실제로 탁신의 여동생 잉락의 당선을 가져왔다.


최근 새누리당이 치사한 짓을 많이 하고 있다. 나도 정말 많이 화가 난다.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패한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잘못일까? 하는 점에는 조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멍청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건 역사의 흐름상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수 대 진보를 선악구도로 보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출발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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