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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가짜 나

09/06/08 12:39(년/월/일 시:분)

아작아작.

나는 항상 먹을 걸 입에 달고 산다. 잠시라도 입이 놀면 심심해서 견딜수가 없다. 무엇이라도 입에 넣고 씹고 빨고 삼켜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견과류를 입에 달고 산다. 땅콩, 아몬드, 호두, 캐슈넛, 마카다미아, 완두, 해바라기씨, 피스타치오, 율무...

아삭아삭.

견과류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리가 없다. 뭔가 씹는 느낌이 나야 한다. 입 안 가득 차는 포만감, 잇몸 가득 파묻히는 질감이 없이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과일 채소를 입에 달고 산다. 양상추, 파슬리, 오이, 알로에, 사과, 포도, 수박, 참외, 멜론, 망고, 람부탄, 리치, 바나나...

특히 요즘 유행하는 '수퍼 푸드'를 즐겨 먹는다. 이것은 소화하는데 드는 칼로리가 음식 자체의 칼로리보다 높은 음식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살이 빠지는 신기한 음식이다.

꿀꺽꿀꺽.

콜라를 마신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검은 액체가 속을 박박 훑어내린다. 지금까지 먹은 견과류와 과일이 콜라와 뒤섞여 배 속에서 화채가 만들어진다.

속이 타들어가도록 1.5리터 한 병을 다 비운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이것은 다이어트 콜라다. 소화가 되지 않는 가짜 설탕으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전혀 찌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은 카페인-프리 다이어트 콜라다. 몸에 해로울지도 모르는, 다소 중독성이 있는 카페인까지 싹 제거한, 완벽하게 건강에 좋은 무-설탕, 무-카페인, 무-의미한 콜라다.



"암입니다."

암이요? 네. 암입니다. 맨날 그렇게 사니까 암이 걸릴 수 밖에요. 규칙적인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건전한 인간관계와 만족과 행복과 사랑과 자동차와 집과 외환과 채권이 없으면 암에 걸려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것은 몸에 해롭지 않은 암이니까요."

해롭지 않은 암이요? 네, 요즘 유행하는 건강한 암이지요. 지금 이 사진을 보시면, 뇌 오른쪽 부위에 양성 종양이 생겼지만, 특별히 몸이나 마음에 이상을 일으키지 않고, 더 이상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 안전한 암입니다.

그럼 저는 어떡하면 되죠? 간단합니다. 그저 지금처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음식과, 마셔도 속을 버리지 않는 술과, 먹어도 중독되지 않는 마약과, 헤어져도 슬프지 않는 애인과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면 됩니다.



삑삑삑삑삑.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삑. 홍채 인식기에 왼쪽 눈을 갖다 댄다.

삐-익. 왼 손등의 핏줄을 갖다 댄다.

삐- 삐이이- 삐이-. 가슴을 갖다 댄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아닙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척 늦은 밤의 아파트 문 앞에 나는 완전히 지친 몸을 뉘었다. 뱃속에서 아까 먹은 땅콩과 아몬드와 양상추와 바나나와 토마토와 카페인-프리 다이어트-콜라가 부대꼈다. 토할 것 같았다.

그러나 토하지는 않았다. 토하면 건강에 나쁘다. 역류성 후두염으로 3개월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어서 구역질을 멈추는 약을 꺼내 삼켰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어서 중독성이 없는 순한, 그러나 강력한 신제품 진통제를 꺼내 삼켰다.


나는 모든 경우에 대비한 대응 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대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언제나 전혀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일이 너무 안 풀리고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주머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몸에 해로운 타르도 없고, 니코틴도 완전히 제거한 무-니코틴, 무-타르 담배다.

모양만 담배고, 맛만 담배다. 실은 이 안에는 니코틴도 타르도 없다. 완전히 빈 껍데기의 하얀 담배다.


하지만 전자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고 한 숨을 내쉬었을 때, 마치 진짜같은 흰 연기가 깊은 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담배연기와 함께 나의 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에는 무설탕 캔디를 털어 넣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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