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3/05/13 07:46(년/월/일 시:분)
나는 어렸을때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중학교 때는 배를 바늘로 찌르듯이 너무 아플 때가 있었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쥐어짜듯이 아팠고, 나는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특히 나는 여름에 찬 걸 먹으면 배가 아팠고, 특히 설사를 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냉면을 먹으면 설사를 안 했다. 그리고, 팥빙수를 먹어도 안 했다. 도대체 다른 찬 음식과 이 둘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 결정적인 차이를 느낀건 생선회를 먹을 때였다. 9900원짜리 광어회를 먹을때는 거의 100% 확률로 설사를 했는데, 1인분에 25000원이 넘어가는 고급 회를 먹으니까 설사를 안 하는 것이었다... 아하. 나는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앞의 싸구려 슬러쉬나 빙수를 먹을땐 간혹 설사를 했는데, 5천원이 넘어가는 아이스베리를 먹으면 별 탈이 없었다. 아니면 7천원이 넘어가는 밀탑, 동빙고 등의 고급 팥빙수를 먹으면 오히려 속이 편할 지경이었다.
내 입이 고급이라서 그랬을까? 그렇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더러운 걸 먹어서 설사를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훨씬 장이 예민해서, 조금만 위생적이지 않아도 과민하게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동남아를 놀러 갔을때 나는 일부러 해산물을 먹지 않았고, 정 먹어야 할때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먹었다. 그랬더니 동남아 갈때 흔히 걸리는 물갈이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우하하! 나는 마침내 내 몸 사용을 마스터했다!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 이것이 무려 서른 두살에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못 먹는 것들이 늘어간다. 9900원짜리 싸구려 광어회는 먹지 않는다. 뼈다귀 감자탕도 먹지 않는다. (상당히 유명한 집을 갔는데도 설사를 했다) 그리고 커피도 거의 먹지 않고, 먹는다면 최대한 이것저것을 많이 넣어서 중화시킨 프라프치노나 화이트 까페 모카 류를 먹는다. 아니면 맥심 모카골드도 좋은 선택이다. 그냥 아메리카노는 너무 속이 쓰리다....
나는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자체보다 먹고나서 배부른 감을 좋아해서 음식을 안 가릴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않좋았던 패턴을 찾다보니 슬슬 안 먹는 음식이 생기고 있다. 과민성 장을 가진 나같은 사람들은 평생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지금이 더 낫다고 느낀다. 중학교때는 너무나 괴로운데 도대체 회피할 방법을 몰라서 애꿏은 내 방 벽을 주먹으로 치다가 벽이 조금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하필이면 내가 때린 벽이 합판으로 댄 가벽이었던 것이었다. 화가 난다고 벽을 때려봐야 내 손만 아프고, 집만 부서지고, 부모님께 혼날 뿐이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좋을 게 없다.
그보다는 먹는 것을 조심해서 배가 안 아프도록 하고, 냉면을 먹을때도 꼭 삶은달걀을 먼저 먹어서 내 연약한 위장이 매운 양념에 대비하도록 하고, 먹고난 후에도 아이스크림이나 우유로 매운 양념을 씻어내도록 한다. 아참, 나는 유당불내증이니 꼭 락타아제를 첨가한 '소화가 잘 되는 우유'를 먹어야 한다. 아니면 끈덕진 요거트를 먹거나, 바나나와 쉐이크해도 설사가 안 난다. 하여튼 유당을 제거하지 않아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면 설사를 안 한다.
여름만 되면 배가 자주 아픈 나와 같은 분들이여, 혹시 나와 비슷하다면 여러분도 더러운 음식을 조심하셔서 아프지 마시기 바란다. 가능하면 비싸고 깨끗한 식당에서 음식을 드시고, 찬 음식과 해산물은 특히 조심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