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출판
08/05/04 00:43(년/월/일 시:분)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유종현 옮김, 여강출판사
- 노예는 (당연하지만) 옛날부터 있엇다. 전쟁 -> 포로 -> 노예. 계급도 있었다. (이집트 파라오를 생각하라)
- 유럽 강대국들이 들어오면서 변한 것은, 기존에는 만여개 부족으로 나뉘어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전쟁하고 노예 사냥하고 했지만, 유럽은 총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력으로 약 30~40개까지 통합하여 국가 형태의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 아무리 주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렇듯이 노예 신분은 엄격하게 두는 곳도 있었고, 웬만큼 노예로 살면 자유롭게 풀어주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자비로운 곳은 노예 비율이 계속 줄어들었고, 노예가 필요하기는 했으므로 노예 사냥을 더 많이 해야 했다. -> 자기가 몇 십년 동안 부린 노예에게는 자비롭지만, 새로 잡아온 노예는 상관없다.)
- 착취가 있는 곳엔 언제나 폭동, 반란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제압할 군사력이었다. 식민 회사들이 가장 먼저 정비한 것도 대규모의 병력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또 당연하지만, 덜 잔인하게 굴리면 폭동도 덜 일어나고, 아니면 그 반대고.
- 아프리카의 엘리트 계층은 처음에 이런 식민 회사를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 한국의 친일파 같은 거랄까. 물론 유럽 식민 회사 쪽도 사람이 얼마 없다 보니까 이런 협력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도 했고.
- 유럽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사이좋게 나눠먹었지만, 착취를 하건 말건 거기서 수익을 내서 본국으로 가져가는 건 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부 식민 회사는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목화, 커피 등 천연자원을 수송할 철도를 30년에 걸쳐 건설하고, 조세제도를 정비하는 등, 식민 회사가 수익을 내기까지는 한 사람의 평생이 걸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착취도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했을 것 같다.
- 식민 회사가 필요로 하는 건 '온순한' 노예였다.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퍼트리고 교육을 시켰는데, 대부분 식민 통치를 반대하지 않았고, 식민 회사도 선교 사업을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교육받은 아프리카인들은 1. 일단 서구 교육에 적응한 뒤 2. 서구 사회에서 높은 수준까지 오르면 3. 아프리카도 더 이상 서구에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한국이랑 똑같네.
-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민 통치 -> 자치를 인정하고 조세를 받는 식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당을 만들고 정부를 구성한 것은 아까 교육받았던 엘리트 들이었다. 일부 지역은 강제 노동에서 임금 노동으로 바뀌었으나, 지역에 따라 임금 노동이 잘 안 먹히는 지역은 여전히 강제 노동이 계속되었다.
유럽 식민 정부 -> 극소수의 교육받은 아프리카 계층 -> 대부분의 강제 노역
-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식민 정부의 예산이 1/3까지 축소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체계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 에티오피아는 기독교 국가이고,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 교육받은 교양있는 국가였다. 이미 1896년에 이탈리아를 이겼을 정도로 군사력도 상당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에티오피아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35~6년, 무솔리니는 폭격기, 독가스를 이용하여 에티오피아를 점령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의 반발을 샀고, 결과적으로 세계 제 2차대전 이후 에티오피아가 가장 먼저 독립국의 지위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 일본이 식민주의에 동참하면서, 식민 통치 사이에서도 경쟁이 생겼다. 일본은 1942년 초반 동남아시아의 모든 식민지를 탈취했고, 동남아시아인들도 백인의 통치보다 같은 아시아 인종의 통치를 반겼다.
당시 동남아시아의 특권계급
유럽인 > 중국인 > 인도인 > 동남아시아인
- 미국과 러시아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적 강자로 떠오르면서, 이들은 유럽 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식민주의를 반대했다. 아프리카 내의 반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식민 정부는 이를 제압한 군사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1960년대에 식민 통치의 시대는 끝났다.
- 그러나 국민의 97%가 독립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데 많은 마찰이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아프리카에서도 진행되었다.
- 쿠데타가 일어났고, 반 쿠데타가 일어났고, 게릴라전이 계속되었다. 미국, 소련, 유럽 국가들은 이들 세력에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적 행동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일종의 대리전 양상을 띄었다.
- 독립 초기에는 대체로 민간 정부에서 군사 정부로 넘어갔는데, 군사정부가 비교적 덜 부패해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고,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정부건 언론은 친 정권으로 아첨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아니라면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한국이랑 똑같냐.
- 독립 후에도 여전히 의회의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남아공에서는 흑인 정당의 넬슨 만델라가 이에 저항했다. 백인 정당은 흑인 정당의 평화 시위에 총포를 발사해서 69명이 죽었고, 흑인 정당을 폐쇠했다. 만델라는 체포되어 27년이나 감옥에 있었지만, 만델라를 상징으로 흑인 저항세력이 분열되지 않고 한 데 모일 수 있었다.
- 신생독립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극좌파였다. 공산주의, 국가주도, 중앙집권, 일당독재. 계급제를 없애고, 부족을 국가로 묶는데는 성공했으나, 비능률적인 관료정치로 자본의 성장이 없었다.
- 한편 높은 사망률/높은 출생률로 인구 폭발. (사망률이 너무 높으면 출생률은 그보다 더 높아진다) 자원은 한정되있고 성장은 없는데 인구는 늘어나니 식량부족.
- 소련의 몰락 이후, 강대국들은 필요가 없어졌으니 아프리카에 원조를 크게 줄였다. 손을 뗀 것이다. 그리고 재래식 무기를 판매했다.(무기판매는 특히 동유럽 국가들의 가장 큰 무역 수입원이었다) 당연히 내전이 벌어졌고, 1983~1997년 사이에 죽은 사람만 150만명이 넘는다.
-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정치적 엘리트 계층은, 설상가상으로, 더욱 부패해갔다. 언론을 장악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무의미한 투표 제도를 만들었다. 군사 정권이 민간인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 알맹이는 똑같았다.
...으악, 한국이랑 너무 똑같애
- 잉여인구가 대량으로 범죄, 매춘, 마약의 길로 접어든다. 에이즈가 급속히 퍼진다.
- 교육받은 경우 아프리카를 떠나 해외로 가버린다. 이런 식의 인재 수출은 과거 노예무역 시절의 노예 수출보다 더 많다. "물건을 수출하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을 수출하게 된다 -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랜즈(David Landes)" 당장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이 체류하는 국가에서 일정 지위에 오른다면, 이들 국가를 아프리카에 우호적으로 만들 것이다.
- 미국의 13%를 차지하는 흑인은, 미국을 현재 가장 아프리카에 우호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슬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지역적으로 가깝고, 기독교 이전에 이슬람교를 많이 받아들였었고, 나이지리아 같은 산유국이 최근 OPEC에 가입하기도 했다.
- 서유럽 국가들은 식민 통치가 끝났지만, 여전히 트럼프 카드를 손에 가지고 있다. 언어의 공통성. 보통 유학생들이 언어를 익히기 위해서 2년을 소비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이점이다.
- 동유럽 국가들은 재래식 무기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에 팔 만한 것이 없다. 미국은 군수산업 말고도 잉여농산물이 많다. 이를 원조하여 아프리카를 미국에 종속시킨다.
-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우는 남아공이다. 이 기적은 전적으로 만델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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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500만년 역사와 문화
The African Exper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