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8/01/05 12:37(년/월/일 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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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교보문고 - 창의성 코너 |
요즘들어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창의성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강남 교보문고에도 창의성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렇게 다들 창의성이 중요해, 뭔가 창의적인 두뇌를 가진 인재가 필요해, 라고 말들 하는데
도대체 창의성이 뭐길래 그러나?
http://www.xacdo.net/tt/index.php?pl=705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하고, (중략) 천재와 광인은 털끝차이라고 하면서, 기존에는 퇴짜를 놓던 아웃사이더도 요즘에는 다소 입사를 시키는 편이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 김태호 PD도 MBC 입사 때 염색하고 피어싱하고 면접에 갔다고 한다. MBC 사장은 "특이해서 뽑았다"고 했고, 실제로 무한도전은 광기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MBC 오락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먹여 살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 '창의성'이라는 말은 교육 쪽에서 쓴다. 아이들을 가르칠때 틀에 박힌 지식보다는, 뭔가 톡톡 튀고 유연한,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하게 만드는 건데.
그렇다면 창의성은 교육이 가능한가?
트리즈(TRIZ) 같은 걸 보면 창의성도 계량화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창의성도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틀대로만 따라하면 창의성이 그대로 되풀이된다는 얘긴데.
만약 창의성에 정해진 틀이 있다면, 그건 틀에 박힌 사고잖아. 그럼 창의성이 아니지.
일단 창의성에 대해 정의를 하고 넘어가자. 나는 간단히 창의성이란 새로운 뭔가를 찾아내는 능력으로 정의하겠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톡톡 튀는,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것.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들 생각하는게 거기서 거기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보편성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울 여지가 얼마나 더 있겠어.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건 진짜로 새로운 게 아니라, 단지 요즘 들어 보기 드물어진 것 뿐이겠지. 즉 진부함의 나머지가 창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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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틀 안에서) 진부한 생각과 창의적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
그러므로 현재 창의적인 생각이 어느 정도 틀을 잡았다고 해서, 그걸 정형화해서 가르치는 것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변할 테니까.
그보다는 현재 진부한 것은 무엇인가, 요즘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뻔한 생각들은 무엇인가, 다들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가, 다들 아는 뻔하고 진부하고 지루한 걸 충분히 가르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는 창의성을 '진부함의 나머지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싶다.
나는 어린 천재를 믿지 않는다. 아주 어린 시절에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해도, 걔는 뭐가 진부한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가면 더 이상 창의성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 진짜 천재는, 요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나, 끊임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과 TV를 가까이 하고, 한 가지 생각에 대해 각 세대별로 20명 이상의 의견을 청취하는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즉 골방에 처박혀서 책만 보는 천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파악하는 천재. 그것이 요즘 시대가 원하는 창의적인 인재 상이 아닐까.
* 영어단어 "Creativity"를 언급한 이유는, "창의성, 창조성, 창의력"이라는 말이 원래 있던 한국 말이 아니라, 영어 "Creativity"의 번역어라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