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05/02 12:38(년/월/일 시:분)
1. MBC 파업
나꼼수 봉주 8회, MBC-KBS-YTN 파업 편을 들으면서, 이번 파업의 명분이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MBC 기자가 김재철 사장의 좀스러운 면을 폭로하고, 법인카드를 심하게 많이 쓰는 것을 폭로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렴치한 개인의 성격을 보여줄 뿐, 사장직 사퇴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파업이 뭔가 정말 대의에 따라, 명분에 따라 희생한다는 느낌보다는,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흉을 보며 킬킬대는 일반적인 직장인 토크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이번 정권 들어서 뉴스의 연성화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MBC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로 대표되는 뉴스의 연성화는 사실 정말 심각해서, 맨날 날씨 얘기가 톱뉴스로 나오고 정작 중요한 정치이슈는 맨 뒤로 빠졌다. 이게 뉴스데스큰지 날씨데스큰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 얘기를 맨 앞에 10분씩 멍하니 보다 보면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물론 정권의 압박으로 뉴스가 연성화될 순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해본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KBS는 그나마 9시뉴스를 6시 내고향 수준으로 연성화했다면, MBC는 정도가 훨씬 심각해서 뉴스데스크를 날씨데스크 수준으로 파격 연성화했다. 여기서도 방송사의 성격이 보였다.
YTN도 돌발영상이 크게 연성화되는 등의 사태를 겪었지만, 그래도 방송 자체가 뉴스 방송이다보니, 민감한 사항을 아예 방송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사안의 방송 비중이 줄어들고, 중요도가 뒤로 밀리긴 했지만, 24시간 방송하다보면 언젠가 몇 번은 언급이라도 하고 넘어가긴 했다.
이렇게 관록이 쌓여서 유연하게 넘어간 KBS와, 그나마 그래도 어떻게든 언급이라도 하고 넘어간 YTN과 달리, 이런 압박을 처음 받아봤는지 MBC는 어리버리하며 크게 싸우다가 결국엔 너무 심하게 무너져 버렸다. 사실 MBC의 정체성은 용감함과 그에 대한 관용인데, 이게 한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http://xacdo.net/tt/index.php?pl=2350
이어서 본 KBS 9시 뉴스도, MBC 뉴스데스크보다 편안했다. 확실히 이번 정권 들어서 뉴스의 연성화가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심각한 얘기를 뉴스에서 아주 최소한만 언급하고, 바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버린다. 그런 와중에 MBC는 정말 가벼운 뉴스를 억지로 억지로 쥐어짜내는 느낌이라면, KBS는 여유롭게 그래도 항상 해오던 대로 충실하게 가벼운 뉴스를 채워 넣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b2xUvmIEVMQ
나꼼수봉주8회 나는꼼수다봉주8회
자, 다시 한번 짚어보자. 정권의 압박으로 뉴스가 연성화될 순 있다. 하지만 이것도 아랫사람을 잘 달래가면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넘어갈 순 있다. 하지만 MBC 김재철 사장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위에서 들어오는 압박을 아무런 필터링 없이 아래로 내려보낸 것 같다. 잘 달래기보다는 윽박지르고, 약간 물러서기보다는 끝까지 지독하게 버텼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MBC 파업의 본질은,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김재철 사장 개인의 리더쉽의 실패라고 본다.
2. 나꼼수, 한명숙의 결정
이번 총선에서 가장 속 터졌던 순간이었다. 김용민 막말 파문이 터지고, 조중동 및 지상파 3사가 이를 대서특필하며 여론몰이를 할 때, 한명숙 대표는 그저 "걱정이다"며 정확한 대답을 피했다. 며칠이나 지나서야 사퇴 권고를 했고, 김용민은 사퇴를 거부했고, 민주당은 크게 화를 내지도, 기뻐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선거를 이어갔다. 정말 속이 터졌다.
차라리 김용민을 제명하던가 지지 철회를 하던가 했어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우유부단하게, 총선 직전의 귀중한 며칠을 허송세월하고, 이도 저도 못하다가 애매하게 사퇴 권고라니! 김용민을 감싼 것도 아니고, 내친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내버려두는 모양새가 정말 보기 싫었다.
게다가 총선 이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한명숙 대표는 슬쩍 사퇴를 해버렸다. 본인의 능력에 벅찬 것도 알겠고, 무척 힘들고 부담스러운 시점임은 알겠지만, 아니 안 그래도 인재가 없는 민주당에서 그나마 가장 괜찮은 사람으로 뽑아놨는데, 이제와서 힘들다고 주저앉아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말인가. 어떻게든 안고 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대표 아닌가.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실패도 상당 부분 한명숙 대표의 리더쉽의 실패라고 본다.
3. 이명박의 리더쉽
이번 정권 들어서 많은 문제가 리더쉽의 실패 때문인 것 같다. 삼국지로 치면, 부하 장수들은 뛰어난데, 군주가 그런 뛰어난 장수들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해 자꾸 전쟁에서 패배하는 꼴이다.
특히나 이명박, 새누리당 밑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두텁게 포진해 있다. 다소 부패했을지는 몰라도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리더가 이런 인재들을 잘 활용하거나 키우지 못하고, 본인의 이익에 따라서 잠깐 쓰고 버린다. 그러니까 아랫사람들이 자꾸 딴 생각을 먹지.
예를 들면 민간인 사찰 폭로 건을 보면, 박지원은 나꼼수 봉주 11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간인 사찰,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들키냐는 거다. 왜 아랫사람이 이걸 폭로했겠나? 리더가 제대로 못 하니까 이런 거 아니냐.
만약 이명박이 유비처럼 자애롭게 아랫 사람을 다독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내치지 않고, 설령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부하가 잘 되도록 배려했다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 하지, 이렇게 배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두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장세동처럼 우직하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비처럼 자애롭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의리는 있어야지. 의리조차 없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마음을 줄 수 있을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5798
정혜신 - 남자 vs 남자
3. 장세동 vs 전유성 - '나'로부터의 도피, '나'를 향한 일탈
이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나꼼수 김어준도 비록 헛점은 많지만 용맹한 장수다. 잘만 쓰면 얼마든지 크게 쓸 수 있다. 안 그래도 야권은 여권에 비해 인재도 적다. 삼국지 말미에 사마의와 싸우는 제갈량처럼, 장수 하나 하나가 귀중하다.
제갈량이 모반을 꿈꾸는 양의를 알면서도 용맹한 장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촉에서 양의마저 목을 베면 쓸만한 장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모른척 놔두고 쓴 것처럼, 민주당에게도 김용민 김어준이 하나 하나 정말 소중한 인재들이다.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대선까지 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감싸안아야 하지 않을까? 한명숙에게 제갈량의 도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50만 대군이 있다고 전쟁에서 이기나? 지지율이 높다고 선거에서 이기나? 결국 중요한 건 장수들이다. 뛰어난 인재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서, 적재적소에 배치해 치밀한 전략을 짜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사퇴시키니... 그래서야 군주라고 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