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04/10 01:05(년/월/일 시:분)
내 지역구는 강남을이다.
1. 김종훈 vs. 정동영
FTA 김종훈이 새누리당으로 강남에 나오다니, 이건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한미FTA는 강남 사람들에게 확실히 이익이고, 강남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한다. 그 어떤 명분도 이길 수 없다.
어차피 누가 나와도 질 곳이기 때문에, 정동영도 질 걸 알고 나왔을 것이다. 그럼 지더라도 적어도 잘 져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FTA 말 바꿔서 배신자 소리를 듣는 판에, FTA를 추진했던 김종훈을 이기려면 적어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동영은 반성하거나 사죄하거나 속죄하기는 커녕, 오히려 샛노란 민주당 점퍼도 안 입고, 과거의 자신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려고만 하고 있다. 본인은 홀가분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회주의자일거면 차라리 아주 철저히 기회주의자이던가. 어설픈 기회주의자가 더 보기 싫다.
게다가 공약도 정권 심판, FTA 재협상, 박원순 시장의 뉴타운 정책 지지 등 기존 민주당의 큰 틀만 그대로 읊고 있다. 강남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한 공약이 없다. 이명박에 실망하고 새누리당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 마음 줄 곳을 찾고 있고,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 있는데, 정동영을 보면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 찍을 순 없는데, 너무 싫다. 이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김종훈은 교활하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에는 충실한 반듯한 공무원 이미지이고, 아마도 노무현도 김종훈의 그런 면을 보고 FTA를 시켰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김종훈이 더 능력있고, 명분이 있고, 세련됐다. 새누리당은 적어도 한국의 보수 정당 중에서는 가장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2. 진보신당 vs. 통합진보당
나는 원래 진보신당 지지자였다. 나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당이다. 하지만 최근 야권연대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보여준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무슨 생각인지도 알겠고, 어떤 입장인지도 이해하겠지만, 너무 좀스럽고 고고했다. 딱히 가진 것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정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샛노란 민주통합당을 찍자니, 그 촌스러운 샛노란 색도 싫고, 서태지 뫼비우스 생각나는 로고도 싫고, 이정희를 사퇴시키고 김용민을 사퇴 권고하는 것도 너무 구질구질하고, 그런 자잘한 것에 흔들리는 한명숙도 무능해보이고, 무능한데다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니 이래서야 새누리당이 좀 덜 부패한 거랑 뭐가 다른가 싶다.
반면 게이색깔 포도색깔 보라색 통합진보당은 적어도 인간적이긴 하다. 이정희를 보면 마음이 짠한 것도 있고, 적어도 한명숙보다 전투력은 높다. 정치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는 것이고, 그러는데는 인간적인 매력, 감화력, 논리력, 전투력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들을 종합했을때 나는 그 진한 보라색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3. 결론
나는 정치를 인간이 하는 가장 고도의 종합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김어준이 말한 "정치란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말도 참 세련되고 트렌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긴 한데, 나도 지금까지 항상 투표를 하긴 했지만, 이번만큼 투표하러 가기가 싫은 적이 없었다. 이명박이 싫고 새누리당이 싫긴 하지만, 그 반대편에 투표하기가 너무 구질구질하다. 이런 증오심에 투표하는 건 전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적어도 노무현을 찍거나 진보신당을 찍을때는 약간의 짜릿함, 통쾌함이 있었다. 이런 신나는 경험을 지금의 야권이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꼼수가 나왔겠지만.
내가 정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는 건, 아침 6시 땡 치자마자 투표소에 길게 줄 설 우리 어르신들 생각해서다. 매일 조중동을 보고 새누리당을 기계적으로 찍으실 어르신들에게 지기 싫다.
나는 젊고, 내 입장에 따라 투표할 것이다. 젊은 사람의 입장과 나이 많으신 분들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런 입장의 충돌을 해결하는 가장 온순한 방법이 투표다. 그래서 나는 내일, 항상 그랬듯이, 투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