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인물
07/01/10 14:59(년/월/일 시:분)
요번 맥월드 2007 키노트를 보는데,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Clicker(무선 프리젠터)가 먹통이 되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둔 예비 Clicker로 바꿔봤으나 여전히 동작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무대 뒤에서 난리가 났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맥이 다운된 모양이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꺼냈다. 워즈니악과 함께 TV Jammer라는 걸 만들어서 스타트렉 흉내를 내면서 놀았던 얘기를 잠깐 했다. 사람들이 웃는 사이에, 화면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키노트는 계속 되었다.
나는 여기서 잡스가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꺼낸게 아무래도 미리 계획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정말로 최후까지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에 대비해서, 시간을 벌기 위해 미리 준비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지. 즉 잡스가 임기응변으로 지어낸 게 아니라, 무려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대처할 방법을 미리 시나리오에 적어놨을 거라는 얘기.
즉 이번 사고는
1. 클릭커가 동작하지 않는다 -> 예비 클릭커로 대체
2. 예비 클릭커도 동작하지 않는다 -> 무대 뒤에서 사람이 대신 클릭
3. 그마저도 동작하지 않는다 -> 아마 맥이 다운된 모양. 그래서 보통 키노트 때는 똑같은 맥 2대를 미리 똑같이 진행하다가, 한 대가 다운되면 예비 맥으로 바로 대체한다. -> 그러는데 몇 분 정도 시간이 걸림 -> 몇 분 정도 시간을 때울 얘기를 한다 (미리 준비된 얘기)
내가 보기에 스티브 잡스는 그다지 순발력이 빠른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아주 차분하게, 너무나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키노트를 계속 이어갔다. 이렇다는 것은 미리 준비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대단하다.
가만 보니까 이번 강연에 초대한 구글, 야후, 싱귤러 CEO도 허리춤에 무선 마이크 송신기를 2대씩 차고 있었다. 아마 마이크도 듀얼로 돌리는 모양이다. 하긴 강연 중에 마이크가 고장나면 얼마나 진땀이 나랴. 물론 무선 마이크 외에도 무대 곳곳에 예비 마이크를 준비해놨을 것은 당연한 얘기겠지.
그 뿐이랴! 지난 번 키노트 때는 iSight를 두 대씩 달아놨다. 실제로 타임 머신 시연 중에 맥이 다운되서, 바로 대체 맥으로 전환해서 시연을 계속하기도 했지. 아마도 듀얼로 돌리는 정도는 기본인 것 같다.
그리고 가만 보면 강연 중에 마시는 물도, 물통 마개를 일부러 좁은 것으로 만들어 혹시라도 엎지를 경우를 대비했다. 혹시라도 시연을 보일 아이폰에 물을 엎질러서 동작하지 않으면 어떡해! 물론 그에 대비한 예비 아이폰도 충분히 준비해 놨겠지만.
하긴 애플 같이 신제품 발표에 기업의 사활을 거는 업체로서 이 정도 준비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여간 배울 점이 많아. 나도 다음 발표 때 따라해봐야지. 최악의, 더 최악의,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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