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들 - 스토리
07/01/05 15:54(년/월/일 시:분)
"여깁니다."
늙은 관리인의 소개로 들어선 곳에는 정말로, 말로만 듣던 세계의 걸쇠가 있었다.
"이 허술하게 생긴 걸쇠가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헬스클럽에 있는, 5kg 단위로 무게를 바꿀 때 쓰는 걸쇠와 똑같았다. ㄱ자라고 해야 할까, ㄴ자라고 해야 할까. 은색으로 빛나는 스텐레스 재질의 걸쇠는, 일렬로 뚫린 구멍 중 하나에 꽂혀 있었다.
"믿을 수 없군."
이 허술한 걸쇠가 세계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틀라스가 세계를 받치다가 도망갔다고는 하지만, 이런 헬스클럽에서나 쓸 법한 스텐레스 걸쇠로 세상을 받치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나는 걸쇠를 손으로 잡고 살짝 움직여 보았다. 의외로 간단히 움직였다.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가벼웠나? 이 정도로 지탱이 되다니.
"그러시면 안됩니다!"
"아니 왜."
"그걸 빼시면, 세계가 무너집니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늙은 관리인을 쳐다보았다. 관리인은 필사적이었다. 여차하면 나를 붙잡아 쓰러트릴 기세였다. 그도 그럴것이 관리인은 평생을 바쳐서 이 소중한 세계의 걸쇠를 지켜왔을 테니까. 한낱 나 같은 길 가던 손님에게 이 보물을 빼앗길 순 없겠지.
그 점이 나를 묘하게 자극했다. 너무도 손쉽게 쏙 하고 빠질 것만 같은 세계의 걸쇠가 내 손 안에 있다니. 살짝 하고 빼는 것만으로 세계를 무너트릴 수 있다. 하하, 이거 우습잖아.
"세계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너지면 안됩니다! 무너트리지 마십시오!"
관리인은 애원했다. 나는 헤벌쭉 웃었다. 견딜 수 없이 즐거웠다. 나는 관리인을 바라보며 걸쇠를 조금만 뺐다. 관리인은 사색이 되어 나에게 달라붙어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나의 완력은 늙은이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물리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리저리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숨이 찼다.
"알았어, 알았다구."
나는 관리인을 안심시켰다.
"빼면 될 거 아니야."
말릴 틈도 없이, 나는 세계의 걸쇠를 뺐다.
우르르릉. 구구궁. 세계를 받치고 있던 기둥이 느리고 둔중한 소리를 내며 무서운 기세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산더미같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다, 이건 분명히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쩐지 즐거운 기분으로, 세계의 걸쇠를 손에 꼭 쥔채, 세계의 멸망을 조용히 기다렸다. 울상을 짓는 관리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러기에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은 정말이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2005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