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12/14 07:54(년/월/일 시:분)
몇 주 전에 친구와 함께 "아저씨 같은 주말을 보내보자" 싶어서, 점심부터 삼겹살에 소주 한병을 나눠 먹고 실내 경마장에 간 적이 있었다. 비록 천원짜리 마권에, 쓰레기통에서 줏은 경마 예상지로 찍은 것이었지만, 살짝 술기운도 돌고 해서 꽤 재미있었는데.
오호, 내가 찍은 6번마가 딱 2등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마침 나는 복연승식이라서 앗싸 돈 땄다 싶었는데, 6번마가 진로 방해를 했다며 심사가 늦춰지는 것이었다. 한 20분 정도 심의한 끝에 6번마가 순위에서 제외됐다. 흑 ㅠㅠ
그 20분 동안 기다리면서 별 생각이 다 나더라. 사실 경마는 그 작은 경기장을 채 한바퀴도 다 못 도는 짧은 코스라서, 말과 기수의 능력보다는 사소한 컨디션의 차이 같은 작은 변수가 승패를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과를 예상하기가 어렵고, 그만큼 조작도 쉽다는 얘기일텐데.
TV화면으로 경기를 봐도 다들 별로 전력으로 달리는 것 같지가 않다. 하긴 하루에 12경기가 있고 그 중 최소 3-4번은 나와야 할텐데, 굳이 전력으로 달릴 필요가 있겠냐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서로 살짝 눈치만 주고 받아도 다들 슬금슬금 뛰는 와중에 살짝 치고 나가는 정도야 일도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마사회는 거기에 심의를 가하는 건가? 어차피 경마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경기야 어떻든 마사회는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챙기니까 어째도 상관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굳이 20분이나 딜레이를 시키면서까지 내가 찍었던 6번마를 구태여 짤라내야겠어?
...아니 잠깐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만약 마사회가 경기의 승패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챙기는 시스템이라면, 오히려 경기가 공정하면 공정할수록 마사회에게 이익이 아닐까? 경기를 조작한 누군가가 돈을 따던 못 따던, 마사회의 수익은 똑같을테니까.
오히려 만약 경마가 불공정하다는 보도가 언론에 살짝 나간다면, 마사회는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을테고, 지금까지 잘만 벌어오던 돈밭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사회는 이미 충분히 수익이 나는 경마를 잘 보전하기 위해 공정성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사회의 입장에서는, 경마가 공정하면 공정할수록 이익이다. 그러므로 결과를 조작하려는 일부 범죄 조직과는 대립되는 관계가 될 것이다.
ps. 비슷한 예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네이버는 전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순위 조작 시비가 자주 붙지만, 네이버 측에서는 공정할수록 좋은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