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상
06/12/07 14:20(년/월/일 시:분)
박찬욱 돈 좀 벌었다고 한번쯤 쉬어가는 영화를 만들었네.
예전에 손노리의 이원술 대표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전부터 다크사이드 스토리 2를 만들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상업성이 없어 보여서, 나중에 회사가 크고 한 작품 정도 쉬어가도 괜찮을 여유가 생길 때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이 영화도 딱 그런 영화다. 참 박찬욱은 대단한 게 이 각박한 한국 영화계에서 박찬욱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어지간히 먹고 들어가는 게 있잖아. 그래서 한번쯤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그다지 적자를 보지 않고 대충 본전치기는 할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별로 대작이 되거나 흥행을 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정말로 해보고 싶은 영화. 덕분에 이 영화에는 참 개인적인 취향의 이런저런 것들이 풍성하게 뒤섞여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잔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잔재미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전체적인 골격이 별로 없어서 장르적인 재미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그냥 엄청 큰거 한방 터트려서 눈물을 질질 짜내거나 통쾌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와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 싶은 영상을 한참동안 구경을 하다 끝나는 정도.
배우 얘기를 하자면 임수정은 참 얼굴이 좌우대칭이 아니다. 이나영, 강동원처럼 약간은 이목구비가 반듯하지는 않아서 카메라를 어떻게 들이대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엄청 달라보이는 얼굴인데,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일부러 이상하게 갖다 대서 엄청 기괴하게 보인다. 하여간 여배우 망가트리는 취미는 있어가지구.
그리고 정지훈은 이목구비가 비뚤어진 것은 기본에, 별로 미남형도 아니다. 보면 볼수록 평범한 수준도 아니라 못생긴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얼굴로 잘도 세계적인 한류 스타 취급을 받는 건지 원. 연기력도 그냥 그럭저럭인 수준이라서, 역시 비는 조연급이 아니면 못쓰겠다 싶다. 물론 여주인공 옆에 붙여놓으면 여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는 꽤 쓸모가 있다.
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화면이, 팀 버튼 생각나더라.
맨 처음 크레딧 보여주는 수법은 '델리카트슨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정지훈은 보면 볼수록 환자 같지가 않다. 마지막에 사실은 의사였다는 반전도 가능했을껄. 아니면 가끔씩 여자가 궁할때마다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와 하나씩 낚아가는 걸지도.
그리고 마지막에 아무리 봐도 섹스신으로 보이는 엔딩에서도 이런저런 상상이 가능하다. 밥 먹이는데도 그렇게 많은 이유를 달아서 겨우 먹였는데, 섹스는 어땠을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여서 꼬셔댔을까? 예를 들자면
저기, 그거 알아? 충전방법에 또 하나가 있는데, 열에너지를 이용한 방법이야. 서로의 몸을 부벼서 마찰 에너지를 일으키면, 몸의 특정 부위에서 그 마찰열을 에너지로 전환시켜주는 부분이 있어. 그게 어디냐구? 정말 몰라? 내가 가르쳐줄께. 그게 어디냐면...
자, 이건 여기까지 하고. 물론 둘이 벌거벗고 드러누운 것이 꼭 섹스를 뜻하는 건 아니겠지. 서로가 가장 순수하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일수도 있고. 하지만, 그 순수하게 마음을 열었다는 게 결국엔 섹스 아니야? 무슨 영화든 포르노로 보는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_-
이 영화에서 또 재미있는 것이 정신병을 끝까지 못 고친다는 것이다. 쨘 하고 병이 나으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정신병자지만 그래도 밥은 먹고 섹스도 하게 된다는 것. 의사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흰옷을 입은 절대자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 그런 실존주의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임수정이 그 많고 많은 정신질환 중에서 "싸이보그"가 된 것은 아마도 형이상학적 존재의 비유가 아닐까 싶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 강철로 만들어진 싸이보그라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렇게 생각만 한다고 실제로 강해지는 건 아니지.
중간에 손가락에서 총이 나와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통쾌하게 쏘아 죽이는 장면에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생각났다. 거기도 연약해보이는 소녀가 거대한 무기를 들고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쏘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인간에 의한 구원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을 가장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그 만큼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든다. 강철로 만들어진 싸이보그가 아니라, 연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언제고 부서질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 그 불완전한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다.
아 그리고 여담으로, 원래 시나리오에는 키스신이 없었다고 하는데 주연배우의 요청으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수정을 추천한 것도 정지훈이라고 하니, 내심 정지훈 쪽에서 키스신을 바랬던게 아닐까. 후후
물론 영화에서 키스신은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에로틱한 건 아니고 막 웃음이 터진다. 박찬욱은 맨날 몰입을 못 하게 만들어. 등장인물들은 한창 진지한 장면인데도 관객이 보기에는 큭큭큭 웃음이 터지는 수법.
아 그리고 흥행에 대해서. 박찬욱은 참 별로 재미도 없는 영화 가지고 그럭저럭 흥행하는 법을 터득한 건 같다. 이 영화가 개봉한 현재, 이거 말고는 그다지 볼 만한 영화가 딱히 없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극장에 찾은 관객이 다른 영화 보기 싫어서 이걸 보게 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
혹시 여자친구가 팀 버튼이나 델리카트슨 같은 스타일을 귀여워한다면, 꽤 꺄아☆ 소리를 내면서 좋아할만도 하겠다. 내 옆에 앉았던 여자도 막 아주 비명을 지르면서 보더라. 그 옆에 남자친구는 최악의 영화라고 투덜대는 와중에. -_- 아 그러고보니 요즘 크리스마스 악몽 3D도 개봉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