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음악
06/11/16 08:01(년/월/일 시:분)
 |
| 악을 바락바락 지르는 젊은 시절의 톰 요크 |
라디오헤드는 언제부터인가 Creep을 부르지 않았다. 가장 히트한 곡이었지만, 밴드의 성향이 펑크에서 일렉트로니카로 변해가면서 별로 어울리지 않게 된 탓이다. 그러니까 펑크로 뜬 그룹이 펑크를 안 한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돼?
Creep은 매우 전형적인 펑크다. 기타 코드도 G B C Cm 이거 4개만 반복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칠수 있다. 정말 중간에 기타가 한번 꽝 터트려주는 부분이 없었다면 아무런 특징도 없는 노래가 될 뻔했다.
Radiohead - Creep (Live)
http://www.youtube.com/watch?v=Z3vChVZl35k
하지만 펑크라는 건 한 시대의 유행일 뿐이라서, 이런 단순하고 치기어린 음악으로는 음악을 오래 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많은 펑크 그룹들이 젊은 시절에만 반짝 인기를 누리다가 다들 그냥 별볼일 없는 한물 간 중견 그룹이 되어갔다. 아니면 그냥 젊은 시절에 요절하던가.
그래서 라디오헤드는 지금까지 잘 치던 기타와 드럼을 잠시 내려놓고 전자음악의 세계로 외도를 떠난다. OK Computer(3집)까지는 그럭저럭이었는데, Kid A(4집)에서는 어쿠스틱 악기를 거의 안 쓸 정도로 변해버렸고, Amnesiac(5집)은 이름부터가 기억 상실증일 정도로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까먹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초기 히트곡인 Creep을 구태여 부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Creep의 라이브는 정말 보기 드문 편이었고, 가끔 해주면 "라디오헤드, 2년만에 Creep 라이브!"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_-
일본 섬머 소닉 2003 라이브
http://www.youtube.com/watch?v=PhIwXPA1Mig
다행히도 라디오헤드의 변신은 성공적이어서, 이전의 인기를 까먹기는 커녕 오히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음악성 있는 밴드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좀 여유도 생겨서 요즘에는 옛날에 내려 놓았던 기타와 드럼을 다시 들고 옛날 스타일로 복귀를 보여주는 Hail To The Thief(6집)을 냈다.
결국 현재의 라디오헤드는, 초기의 펑크와 후기의 전자 음악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걸쳐 있다. 앞의 것은 젊은 시절에 하던 조금은 치기 어린 음악이고, 뒤의 것은 음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최첨단 음악이다. 벌써 데뷔한지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이제는 그 둘이 공존할 수 있는 지점에 온 것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서 라디오헤드가 Creep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초창기처럼 악을 바락바락 지르면서 온 몸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나름 힘빠진 중견 뮤지션의 모습으로 적당히 대충대충 하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뮤지션도 나이를 먹으면 음악이 순해지는 모양이다. 막 나가는 것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니까. 그보다는 좀 자기 몸도 생각하면서 오래오래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지. 그래서인지 같은 노래인데도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10년이란 세월 때문일까.
이를 기념하여 나도 Creep을 한글로 번역해서 불러봤다. 얼마 전 열렸던 건대 일감호 가요제에 나갔다가 예선에서 떨어진 바로 그 곡이다. 여러분도 mp3로 다운받아서 호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면서 들으세요. ^^ (갑자기 존댓말)
http://xacdo.net/original/discography/creeptake2.mp3
xacdo - 겁쟁이(Creep) (Tak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