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09/26 12:37(년/월/일 시:분)
하나는 들은 얘기고, 하나는 실제 경험이다.
내가 삼육대학교에 지원할때 얘기다. 마침 내가 사는 구리시에도 가깝고, 서울에 있는 한의학과 중에 가장 점수가 낮았기 때문에 만만한 삼육대에 원서를 냈었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삼육대학은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미션 스쿨이다. 내가 사는 구리시에도 삼육 중고등학교가 있고, 삼육대학도 구리시에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서울인데도 구리시에서 경계선을 넘어 딱 200미터만 가면 삼육대다.
삼육대는 교풍도 엄격해서 입학할때 대학 내에서 술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걸리면 진짜로 퇴학이다. 마찬가지로 미션 스쿨인 세종대도 술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지만, 퇴학당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삼육대학교 정문에는 술집이 없다. 후문에는 조금 있지만.
어쨌든 삼육대에 친한 친구랑 같이 원서를 냈다가 나는 떨어지고 친구는 붙었다. 그래서 얘는 토요일마다 억지로 채플에 참가해야 했는데, 거기서 들은 얘기다.
한 교수는 독실한 제7일 안식일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육대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갈 점수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학의 면접날이 하필이면 토요일이었다는 것! 토요일은 안식일인데 어떻게 면접을 볼 수가 있느냐! 고민한 끝에 교수는 면접에 불참했다. 그리고 삼육대학교로 왔다.
물론 교수는 그 결정에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기쁨으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다음 얘기가 말인데, 내가 겪은 얘긴데, 군대 있을때 교회 선생 얘기거든.
군대 가서 교회에 갔다. 나는 신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교회에 재미를 붙여서 병장이 되도록 교회에 다녔다. 좁아터진 부대 안에만 갇혀있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바깥 바람을 쐬는 것도 좋았고, 부대에서는 들을 수 없는 풀 볼륨의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 것도 좋았다. 밥도 부대보다 맛있었고, 종교인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도 좋았다.
그 부드러운 분위기의 중심에는 우리 부대를 담당하는 선생님, 조종사 대위 분이 있었다. 우리 부대는 육군항공이라 공군 기지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래서 종교활동도 공군 교회에 덤으로 껴서 들었다. 그래서 우리 부대를 따로 담당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은 잘 나가는 조종사 대위로, 가끔 활주로에서 얼굴을 보면 멀리 손을 흔들어 화답하곤 했다. 부대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교회에서 느낀 바로는 항상 웃는 얼굴에 어떤 잘못도 쉽게 용인하는 털털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 분이 고민이 생겼다. 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 분은, 진급을 위해서 토익 시험을 봐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시험이 일요일에만 하는 것이었다. 토익을 보려면 교회를 빠져야 한다. 이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분은 토익 시험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무려 8개월이나 고민한 끝에, 결국 안 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평소 그 분의 융통성 있는 태도와, 언뜻 보이는 뛰어난 실력으로 볼때, 토익을 본다면 쉽게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고 당연히 볼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그 분은 그 어렵다는 전투기 조종사를 젊은 나이에 대위까지 빠르게 진급한 유능한 분이다. 그런데, 그런데 교회를 빠질 수 없다는 이유로 토익을 포기하다니!
나는 그 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고, 전역할 쯤 되어서야 그 분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렴. 독실하면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