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상
06/09/03 14:37(년/월/일 시:분)
DVD도 출시되지 않은 악어가 왠일로 AVI가 떴길래 받아봤다. 그런데 어라, 이탈리아 자막판이잖아. 그것도 케이블TV에서 해준 걸 캡처한 모양이다. 새삼 김기덕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참 열심이네.
자잘한 퀄리티에 신경 안 쓰는 김기덕의 영화인 탓도 있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작품이라서 정말 퀄리티 하나는 끝내주게 나쁘다. 물론 김기덕이 옛날걸 보정해서 다시 내줄리가 없기 때문에 (그럴 시간에 영화 한편을 더 찍겠지) 그냥 참고 보는 수밖에.
원래 줄거리는 끝까지 소개하는게 작도닷넷의 정책이기도 하고, 어차피 이 영화를 일부러 찾아볼 사람도 없을테니,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끝나는가 간단히 소개하자. 잘 읽어봐요. 내 얘기 되게 재밌어.
조재현(악어 형)은 김기덕 영화에선 항상 그렇듯이 쓰레기 인간이다. 한강변에서 노숙하면서 가끔 한강 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주워서 돈을 뜯어먹는 악어 같은 자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자살하는 걸 구해준다. (보통은 지갑만 빼고 구해주진 않는다)
구해준 이유야 뭐 삼삼하니까 따먹으려고 했던 거지. 근데 그 여자는 실연을 당해서 자살을 하려 했던 거다. 여자는 너무나 체념한 나머지, 강간을 당하고도 악어에게 머물러 있는다. 그래서 그 집에는 악어 형, 할아버지, 앵벌이 꼬마, 그리고 파란색 여인네까지 모여서 유사 가족이 만들어진다. 꼭 '괴물'을 보는 것 같다.
하여간에 한강 물은 되게 지저분한데 조재현은 맨날 거기 자맥질을 하고, 여자가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는 걸 보고 물 속에 그림을 걸어놓는다. 물 속은 악어에게 이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세상살이를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근데 여자는 아직도 남자를 잊지 못하고, 악어는 그 남자를 찾아가서 여자랑 다시 엮어주려고 했는데, 알고보니까 이 남자가 아주 나쁜 놈이었던 거라. 잘 사는 집안의 여자를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린 거라. 남자는 깡패를 사서 여자를 강간하고 악어를 곤경에 빠트린다. 물론 이 사실을 여자는 모르고, 악어만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
열받은 악어는 여자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고, 남자가 나쁜 놈이라는 공감대를 얻은 후, 남자를 꽁꽁 묶고 여자 손에 총을 쥐어준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차마 죽이지 못한다. 악어는 총을 빼앗아 쏘지만 역시 남자를 죽이지는 않는다.
둘은 한강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강간이 아닌 화간을 한다. 그리고 여자는 처음처럼 한강에 뛰어들어 또 자살한다. 그런데 이번에 악어는 여자를 구하는 대신, 같이 죽기로 한다. 가라앉는 여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자신의 팔도 채운다.
그래서 둘이서 한강에 가라앉아서 죽는구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물속에서는 이루는구나.. 참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다.. 하고 뻔하게 끝나려는 찰나, 마지막 5분에 놀라운 반전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김기덕 영화의 시작이다.
악어가 여자랑 수갑을 차고 편하게 죽으려는 찰나, 악어가
죽을 것 같으니까 살고 싶어진 거다. 수갑을 풀러보려 하지만 숨이 차서 열쇠가 잘 맞지 않고, 엄지 손가락을 잘라서 수갑을 빼보려 하지만 빨간 피만 물 속에 퍼질 뿐, 결국 죽고 만다.
결국 악어는 죽기로 결심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악어가 파란 옷의 여자와 끝까지 사랑을 하지 못했으리라. 아마 거기서 악어가 조용히 죽었으면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택한 것은 그런 우아함이 아니었다. 훨씬 거칠고 구질구질하더라도 사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악어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제는 마지막에 삶의 의지를 놓느냐, 끝까지 붙드느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느슨하긴 하지만 우아하게 죽을 것이냐, 아니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길 것이냐. 김기덕의 대답은 구질구질하더라도 후자 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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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박스 검색기 - '악어'라고 검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