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상
06/08/29 23:00(년/월/일 시:분)
김기덕의 신작 '시간'에는 김기덕 영화 최초로 간간히 웃긴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극장에서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질 정도로 웃긴 장면이 말이다. 물론 평범한 개그가 아니라 김기덕식 개그긴 하지만 진짜로 웃기긴 웃기다. 왠일이래 김기덕이 개그를 다 하고.
물론 이쪽 분야의 대가는 홍상수다. 홍상수 영화는 정말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기다. 그는 정말 꾸준히도 자기식 뻘쭘 개그를 해왔다. 한번 그 개그에 중독이 되면 헤어나올수가 없지.
http://leegy.egloos.com/205009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中 여자다리 훔쳐보다 망신당하는 장면
아... 한국영화 사상 아니 세계영화 100년 사상 가장 무안하고 뻘쭘한 장면...
하긴 최근 천백만을 넘긴 괴물을 봐도 봉준호 특유의 개그가 살아있지. 분명히 울음이 터지고 감정이 폭팔해야 할 부분인데도 어이없이 실실 웃음이 나오는 장면. 물론 이거는 박찬욱식 개그를 따라한 거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한국 감독들은 이런 불편한 개그 부분에서 다들 나름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다른 나라 영화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한국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개그 감각.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잠시 개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웃음은 긴장이 일시에 풀리는 순간 발생한다. 이 사람이 엄청 진지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바보였다던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별일 아니었다던가. 그래서 그 긴장을 일시에 해소하기 위해 우리 몸은 마구 웃으며 긴장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즉 웃음은 긴장거리에 대해 거리를 두는 순간 발생한다.
홍상수 영화가 웃긴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감독이라던가 여배우라던가 하는 그럴듯한 직책으로 서로 접근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남녀관계란 그저 동물적 욕구가 가득한 추잡한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그 진지함이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 갑자기 뻘쭘해지고 부끄러워지는 순간,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인간의 명예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 휴머니즘의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이런 개그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웃을수 없고 뒷맛이 씁쓸하다. 그래도 웃기긴 웃기지.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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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란 무엇인가 - 재미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