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상
06/08/25 09:54(년/월/일 시:분)
김기덕의 시간을 보고 놀란 점은, 일단 전에 보이던 잔인함, 여성비하, 난해함 같은 것이 상당 부분 절제되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놀란 점은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는 점, 심지어는 간간히 유머를 섞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는 점이다.
나는 성현아가 미친듯한 열연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그리고 새희가 끝을 모르고 몰락하는 것을 보며, 처음 '시간'이라는 제목이 시계소리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며, 박찬욱의 '올드 보이'를 떠올렸다. 최민식의 미친듯한 열연, 오대수의 끝을 모르는 몰락, 그리고 시간을 소재로 사용한 점. 그리고 이 영화는 올드 보이처럼, 재밌게 볼 수 있다. 놀랍지만 진짜다.
일단은 대사가 많아서 이해하기 쉽고, 배우의 연기에 많이 의존해서 기존의 추상성이 덜하고, 남녀의 연애 얘기라 이해하기 쉽고, 거기에 김기덕 영화에 출연하기에는 조금 비싼 배우가 아닌가 싶은 성현아가 출연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말년휴가 나와서 보고 좌절했던 영화)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하정우도 나오고, 여기에 금상첨화로,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김기덕의 논란 점화, 심지어는 100분 토론에까지 출연하며 열심으로 언론에 홍보까지.
난 김기덕 영화가 이렇게 흥행 코드를 갖춘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김기덕 영화는 처음부터 꾸준히 관객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 왔지만, 이번 '시간'에서는 아주 작정을 하고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너무 대중적이라 외국의 매니악한 영화제에서도 별다른 수상 소식이 아직까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이런 영화마저 흥행에 실패하면 정말 그만둘 만도 하지.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section=rev&office_id=074&article_id=0000015502
김기덕의 '대중적' 성찰 <시간>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st=code&sword=57829&nid=402327
김기덕 시간 보고왔슴. 장점과 단점을 말해볼게요
1. 김기덕 영화중에 가장 대중적이다. "빈집"보다도. 결코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2. 사람들이 많이 불편해하는 "김기덕식" 여성관이나, 가학-피학-자학의 악순환이 직접적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3. 대신 연애를 1년이상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생각해봤을, 그러나 결코 머리 밖으로 꺼내지 않고 숨겨두었던 그런 감정들이 얼굴바꾸기 놀이를 통해 드러난다.
4. 커플끼리 가면 대단히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도 그러하다. 다만 연애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모든 걸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연애의 경험을 전제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5. <용서받지 못한 자>에도 나왔던 하정우. 연기 잘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아사노 타다노부 같은 배우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http://www.cine21.com/Magazine/mag_pub_view.php?mm=005004004&mag_id=38024
그는 여전히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보는 내내 감각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위험할 정도로 자기 영화를 한쪽의 경계까지 몰고 간 다음 재빨리 그걸 반대 방향으로 끌고 와서 그 한계까지 밀고 간다.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혹시나 <빈 집>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던 <활>의 매너리즘을 간단하게 바다에 던져버린 다음 여기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를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정말, 정말 이 사람은 점점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