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1/11/20 03:54(년/월/일 시:분)
나꼼수 대전 공연은 원래 카이스트 강당에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카이스트 측의 갑작스러운 대관 취소로 부득이하게, 카이스트 근처의 야외 공원에서 하게 되었다.
나는 마침 대전에 있기도 해서 보러 갔다. 나는 이 추운 날에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했는데 우와... 의외로 많이 왔다. 내가 얼추 세보기로 적어도 4천명은 온 것 같았다. 공원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추울 틈도 없었다.
토크 콘서트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었다. 기존 라디오에서 했던 얘기들 중에 재미난 것들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조금씩 다시 얘기하는 형식이었다. 공지영 작가도 나왔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은 똑같은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왜 토크콘서트를 따로 녹음해서 공개 안하는 이유을 알 것 같았다.
특별한 내용은 없어서 실망이긴 했지만, 실제로 이 나꼼수 4인방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경험은 꽤 괜찮았다. 열애설까지 터진 세계 최초의 시사 아이돌, 김어준 총수는 살찐 얼굴과는 달리 몸은 전체적으로 살이 찐 편이 아니었다. 얼굴 위주로만 살이 찐데다가, 나이에 비해 늙어보이고 지쳐보였다. 건강이 걱정되는 인상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았다.
반면 정봉주 전 의원은 생각보다 훨씬 뺀질뺀질하니 얼굴이 좋아보였다.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은 얼굴이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도 많이 있었고, 정치인이라는 것에 비해 경박하고 놀림도 많이 받지만, 본인은 그런 것에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정신건강이 튼튼하다고 해야 할지, 그냥 애 같다고 해야 할지...;;
김용민 전 교수는 얼굴은 좋아보였으나 몸이 너무 쪘다. 정말 많이 먹는 것 같았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고, 실제로 풀리는 것 같았다. 처음 토크콘서트 할때 너무 긴장되서 짜장면 다섯그릇, 스테이크 2인분을 혼자 먹었다고 한다. 그러고 배탈이 나서 소화제를 찾았다고... 김용민 전 교수는 일단 내과를 가서 위장병부터 고쳐야 살을 뺄 수 있을 것 같다.
주진우 기자는 무슨 기자가 아니라 무술가 같았다. 약간 마른 근육질 타입에, 슬림한 핏으로 검은색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행동도 자꾸 팔을 흔들고 짝다리를 짚는 불안한 김어준과 달리, 주진우 기자는 허리를 곧게 펴고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정말 무슨 킬러 같았다. 여차하면 경호원의 팔을 꺽어버리고 당당히 집무실로 들어갈 것 같았다.
주로 건강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나도 참 사람의 건강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하여튼 김어준 총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무조건 자기위주로 진행하려는 정봉주를 적당히 잘라내고, 지루한 정치적 멘트로 일관하는 충청도지사를 적당히 마무리시키고, 하던얘기 까먹은 단무지에게 이야기 마저 시키고, 정말 유재석처럼 자기 얘기를 하지 않고 남 얘기를 계속 시켰다. 거의 하는 말 없이 뒤에서 짝다리짚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간간히 끼어들어서 진행을 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때도, 사실 이 분위기는 무척 상황도 안 좋고, 어떤 의미로는 투쟁이고 시위인 셈이다. 그래서 기존 운동권처럼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목청높여 통일된 구호를 외칠수도 있지만, 그건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최대한 가볍고 유쾌하게, 즐겁고 쿨하게 싸우고자 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말도 최대한 줄이고, 농담의 비중을 높인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의 투쟁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마지막은 모두 '일어나'를 부르면서 끝났지만, 결코 진지해지지 않았다. 비장해지지도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쿨하려고 했다. 아 멋있었다.
사실 김어준도 논리로 깨면 얼마든지 깰 수 있는 사람이다. 헛점도 많고 약점도 많은 사람이다. 난 예전 2007년에 미국 있을때 폭스에서 마이클 무어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걸 봤고, 거기에 또 스마트하지 못한 타입의 마이클 무어가 어리버리 멍청하게 대답하는 것을 수도 없이 리플레이로 봐야 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스마트한 타입이었다면, 김어준 정도는 가볍게 논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기에 지금 김어준이 시사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가 대단해서라기보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해 생긴 반대급부이듯, 김어준에 대한 열광도 김어준의 인간적인 매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김어준도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직감적으로 판단하기에, 이건 지나치다. 지금 나꼼수 현상은 과열되어있다.
지금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김어준이나 안철수가 아니라, 단순히 이명박의 반대편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점은 김어준이나 안철수나, 이를 이미 알고 있고, 이 과열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대중의 기대를 자기의 좁은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우연히 타오른 이 불꽃을 쉽게 꺼트릴 수 없다. 어떻게든 불씨를 살리고 싶다. 하지만 그 종착역이 나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