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음악
16/09/28 04:02(년/월/일 시:분)
* 이 글은 2015년 9월에 쓰던 글을 2016년 9월에 마저 이어 쓴 글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내가 주기적으로 챙겨보는 것들이 있다. 빌보드, 북미 박스오피스, MTV VMA, 칸 국제광고제다. MTV 시상식과 칸 광고제야 1년에 한번이니까 어떻게든 챙겨볼 수 있지만, 빌보드와 북미 박스오피스는 매주니까 잘 못 챙겨듣기도 한다. 많이 밀리면 3개월에 한번씩 듣기도 한다. 하여튼 이것을 (재미가 없어도) 일부러 챙겨보는게 내 나름의 의지다.
왜 멜론 차트, 가온 차트나 오리콘 차트가 아니라 빌보드 차트냐 하면, 한국/일본 차트도 열심히 따라가봤는데 생각보다 오염이 많이 되는 것 같아서다. 누군가 신곡을 내서, 많은 돈을 들여 대규모로 많이 듣는 것처럼 조작하거나, 혹은 특정 팬덤에서 일부러 과하게 듣거나 앨범 사재기를 하면 바로 상위권에 들어간다.
너무 물이 얕아서일까? 쉽게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한다. 이것이 과연 일반 대중의 호오를 대표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구매력이 강한 소수 집단이 전체 차트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꼭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맹목적인 팬들은 음악의 품질이 떨어져도 굳게 지지하는 편이라, 그냥 그런 보통의(전문용어로 미디오커 mediocre) 노래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해서 음악을 듣는 재미가 떨어진다.
팬덤도 두툼하고 지명도도 있는 중견 음악가들은, 음악에 돈도 들이고 열심히 신경도 쓰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나쁜 노래를 만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예술이란건 꼭 돈을 많이 들이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결과물은 그냥 딱 현상유지 정도의 평범한 작품인 경우가 많다. 난 그런 걸 듣는게 지겹다.
반면, 빌보드는 워낙 듣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식으로 오염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음악들을 상위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원 다이렉션 같이 발매하자마자 최상위권으로 직진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없진 않지만, 대체로 말하자면 말이다)
빌보드를 듣는 재미라면, 과연 이런 노래가 대중적으로 팔릴까? 싶은 의외의 노래들이 의외로 꾸준히 상위권에 올라온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그런 우연이 난 너무너무 재밌다. 그래서 빌보드를 일부러 꾸준히 챙겨 듣는다.
"그래, 이런 노래니까 상위권이지" 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되는 노래도 많지만, "아니, 도대체 왜 이런 노래가 상위권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노래도 가끔 나온다. 그런 발견, 우연한 마주침이 한국/일본의 지루한 음악 차트에서 느꼈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소해준다.
최근에 그런 예가 오엠아이(OMI), 페티 왑(Fetty Wap) 이었다.
OMI - Cheerleader (Felix Jaehn Remix)
난 처음에 이 노래가 영어가 아니라 무슨 아프리카 말인 줄 알았다. 워낙에 억양이 강해서였다. 발음도 선명하지 않고 흘리는 듯 해서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고, 보컬 성량도 미약하고 음역도 넓지 않아서 듣는 사람을 압도하는 파워가 없었다. 이걸 그냥 리버브를 시원하게 먹여서 대충 넘기려는 듯 한 사운드 설계도 게으르게 느껴졌고.
근데 이게 왜 상위권일까? 이해가 안 가서 여러 번 듣다 보니까 (보통은 별로라고 생각하면 안 듣고 말텐데, 난 그걸 또 이해하겠다고 여러 번 듣고 있다) 이 차분하고 행복한 보컬이 왠지 자꾸 머리에 맴도는 것이었다. 중독성이 있었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들렸다. 신기했다.
보컬은 파워가 없긴 했지만, 오히려 힘이 약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들렸다. 이것이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옛날 식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컴프레셔와 맥시마이저를 잔뜩 먹여서 라우드니스 워를 하던 시절이라면 당연히 묻혀버렸을 보컬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라이브 보컬이 아니라 스튜디오 보컬이 가능한 시대다. 해상도가 높고 섬세한 특성의 마이크를 보컬에 맞게 잘 골라서, 작은 소리도 잘 들리도록 다듬어주면 얼마든지 흥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소리의 포만감보다는 공간감을 중요시하고, 직선적이기만 하기보다는 곡선적일수도 있고, 직접적인 것도 좋지만 간접적일 수도 있도록 표현의 범위를 풍부하게 확장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스튜디오 보컬의 큰 단점이 있는데, 스튜디오를 벗어나면 매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된 스튜디오 안에서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갸냘픈 보컬인 탓에, 어디 밖으로 나가서 거친 바람이 부는 라이브 무대 위에 오르면 그 갸냘픈 모래성은 금새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OMI도 라이브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다들 노래는 귀에 익숙해서 따라불렀지만 정작 본인은 그 열광적인 반응에 힘겨워했다. 사람들이 크게 반응해질수록 본인의 목소리가 묻혔다. 관객의 파워에 가수가 압도당하는 꼴이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OMI 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렇게 못 부르는 건 아니고 그냥 힘이 약한 거니까. 하지만 Fetty Wap은 정도가 더 심하다. 이 분은 확실히 못 부른다. 근데 노래는 엄청 좋다.
그럼 보컬은 별로지만 노래가 좋아서 뜬 것이냐? 아니다. 보컬이 좋다. 근데 잘 들어보면 도저히 사람이 이렇게 부를 수가 없는 모습이다. 보컬 보정을 엄청 잘 한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 성취라 불러야 할 것이다.
Fetty Wap - Trap Queen (Official Video) Prod. By Tony Fadd
보통 보컬이 목소리가 안 좋다고 하면, 목이 쉬거나 상해서 허스키 보이스인 경우가 많다. 근데 Fetty Wap은 그 정도가 아니라 목이 엄청 부은 것 같다. 목부터 코까지 염증으로 꽉 차서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다. 겨우 숨만 헐떡거릴 것 같은 목소리다.
근데 그런 답답하고 꽉 막힌 목소리로 엄청 플로우 좋게 노래를 부른다. 거의 쉴 틈도 없이 계속 꾸준히 안정적으로 부른다. 아니 이런 목소리가 세상에 가능하기나 한가? 게다가 꽤 고음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근데 과연 목이 이걸 버텨줄까?
목이 노래를 버텨줄지 여부는 유튜브에서 라이브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히 버티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스튜디오에서 부분 부분마다 끊어서 부른 걸 잇고, 조금 틀린 음정과 박자를 섬세하게 고친 사운드 엔지니어의 공이다.
이것은 요즘처럼 스튜디오에서 모든 것을 섬세하게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보컬이다. 예전에는 아예 가능하지도 않았다면, 이제는 스튜디오 안에서나마 한정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스튜디오 밖으로 나오면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는 점에서는 어떤 면에서 사이버 가수 아담과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스튜디오 보컬을 좋아하는가? 라이브 보컬보다는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스튜디오 보컬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난 시대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라이브는 별로지만 적어도 유튜브에서는 멀쩡하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