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06/03/05 09:45(년/월/일 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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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다큐] 대구 MBC 창사특집 2부작 - 생명의 소리, 아날로그
다양한 임상실험을 통해 디지털 음악의 유해성을 검증한다. 아날로그 음악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해외 선진국들을 찾아 디지털 음악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발끈했다. 누가 MBC 아니낼까봐. 디지털 음악의 유해성을 '검증'하다니! 테크노/일렉트로니카 애호가로서 화가 났다.
사실 예전부터 이런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처음 CD가 나왔을때 LP 애호가들은 아날로그 옹호론을 펼쳤고, MP3가 나오면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늘어갔다. 심지어는 디지털 음악이 아날로그와 달리 인체에 유해하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까지 나왔다!
흔히 하는 실험으로, 식물에 여러가지 음악을 들려줘서 생장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이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모짜르트 같은 클래식을 들려준 식물이 마릴린 맨슨 같은 메탈을 들려준 식물보다 생장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아날로그 LP판을 들려준 식물이 디지털 MP3를 들려준 식물보다 잘 자라고.
위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식물 생장속도의 비교
1위 아무것도 안 들려준 평범한 식물
2위 아날로그 LP판을 들려준 식물
3위 CD를 들려준 식물
4위 MP3를 들려준 식물
그래서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생장속도가 느리니까 디지털이 유해하다고 편리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잘 살펴보자!
아날로그를 들려준다고 해서 생장속도가 빨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음악이 공통적으로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LP < CD < MP3 순으로 식물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잘 보면 들려주는 음악의 품질과 스트레스가 비례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음악의 아날로그고 디지털이고가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의 품질이 높으면 스트레스가 덜한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미국의 사기성 짙은 교수에게 삼각근 근력 측정을 받는 실험이 나온다. 들려주는 음악에 따라 삼각근의 근력이 변화한다는, 오링 테스트를 연상케 하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 실험이다.
방법은 팔을 몸과 ㄱ자가 되도록 곧게 펴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힘껏 눌러서 팔을 구부러트리는 것이다. 그래서 버티면 몸 컨디션이 좋은 거고, 못 버티고 꺽이면 컨디션이 안 좋은거다.
(같은 피아노 연주곡의 경우)
아날로그 LP - 팔이 꺽이지 않는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 - 팔이 꺽이지 않는다
고음질 SACD - 팔이 꺽이지 않는다
일반 CD - 팔이 꺽인다
두번 실험을 되풀이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즉 CD의 경우는 디지털이라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자. 왜 일반 CD만 팔이 꺽일까? 같은 디지털인 SACD는 왜 팔이 안 꺽이는 걸까? 고음질이라? 품질이 높아서 그런 거라면, CD보다도 한참 품질이 떨어지는 LP판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험을 보면 팔을 꺽기 위해 힘껏 여러번 시도를 한다. 즉 CD의 경우 팔이 꺽인 것은 어찌보면 실험 막바지라 팔에 힘이 빠져서 그런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순서를 바꿔서 실험하지는 않았다.
사실 모짜르트 이펙트 같은 경우,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무슨 아름다운 클래식을 들려준다고 해서 더 머리가 좋아지거나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굳이 황우석 교수가 아니더라도 논문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날로그 음악이라고 해서 몸에 좋고, 디지털 음악이라고 해서 몸에 나쁜게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MP3 같은 경우 품질이 떨어지는 면은 있지만, 이것 덕분에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싸고 편리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즘의 디지털은 많이 발전해서, 예전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구현하는 수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옛날 진공관 앰프를 훨씬 싼 가격으로 흉내내는 이펙터라던가, 옛날 테이프의 따뜻한 질감을 흉내내는 디스토션이라던가.
요즘 70년대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확실히 그 시절 음악의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진다. 오죽하면 6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라는 장르가 없는데 오직 유일하게 70년대 음악이라는 장르만 있겠는가. 그 시절에는 요즘 음악과 다른 따뜻하고 뭉툭한 사운드가 있었다.
그 시절은 시기적으로 아날로그적 방법론이 가장 집대성되었던 시기다. 그 후로는 CD의 등장으로 디지털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싹 바뀌어 버렸으니까. 그래서 그 이후에는 사운드에 여유라는 게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듬성듬성하고 여유로운 방탕함을 요즘 앰비언트 테크노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가장 최첨단 디지털 음악이라고 손꼽히는 테크노에서 옛날 70년대에나 느낄 수 있었던 듬성듬성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니!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단순한 소음의 진동에 불과한 것을 듣기 좋은 음악으로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있으니까 말이다.
처음 군대에 들어가서, 그토록 좋아하던 컴퓨터와 헤어져 6주간 힘든 훈련을 받고 자대 전산실에 배치되었을때, 전산실을 가득 채우는 컴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음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는지 모른다. 눈물이 날 뻔 했다니까.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