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1/09/01 09:39(년/월/일 시:분)
대학교 때 이야기다. 컴공 3학년 전공과목 숙제가 나왔다. 전공 책의 연습문제를 푸는 건데, 정말 어려웠다. 매일 밤 10시까지 해도 안 풀리고, 한 3일 동안은 새벽 2시까지 풀었는데도 잘 안 풀렸다.
너무 너무 고생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해답지를 구해서 베꼈는데, 헐 이럴수가. 해답이 틀렸다. 내가 푼 게 맞았다. 몇 번을 다시 풀어도 마찬가지였다. 헐이다 헐.
그 후로 왠지 교수님이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내가 맨날 맨 앞에 앉긴 했지만, 아마도 다들 틀린 답을 베껴 내는 와중에 내가 푼게 신선하지 않으셨을까. 아, 공부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정말 어렵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해답지를 보지 않고, 최대한 고생해서 열심히 생각을 해내면 그게 공부가 된다.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태도다.
근데 회사는 학교와 다르다. 회사는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내야 한다. 그것이 나를 괴롭힌다.
내 방식은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비록 품질은 높을지라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맨날 야근을 하게 되고, 주말 출근을 하게 되고, 집에 가서도 일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많이 들이는 만큼 결과가 잘 나오는 걸 아니까, 더 시간을 들이는 거다.
그런데 맨날 피곤한 몸으로 퇴근을 하면서, 왠지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품질에 공을 들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IT 분야 중에서도 특히 내가 하는 기업용 서비스는 품질에 덜 민감하다. 회사 사람들은 충분히 능숙해서, 어지간한 에러는 알아서 피해간다. 아주 잘 만들면 조금은 좋아하겠지만, 많이는 아니다.
좀 더 품질에 민감한 곳으로 가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