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6/09/08 05:44(년/월/일 시:분)
GRE Writing 시험에 argument 하는게 참 흥미롭다. 언뜻 보기엔 멀쩡해보이는 글을 주고, 여기에 논리적 오류가 많이 있으니 탈탈 털어보라는 시험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rgue #48. The following appeared in a magazine article about planning for retirement.
"Clearview should be a top choice for anyone seeking a place to retire, because it has spectacular natural beauty and a consistent climate. Another advantage is that housing costs in Clearview have fallen significantly during the past year, and taxes remain lower than those in neighboring towns. Moreover, Clearview's mayor promises many new programs to improve schools, streets, and public services. And best of all, retirees in Clearview can also expect excellent health care as they grow older, since the number of physicians in the area is far greater than the national average."
Clearview는 환상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과 한결같은 날씨때문에, 은퇴를 고려하는 모든이에게 최고의 장소이다. 또다른 장점으로 지난해동안 Clearview의 집값은 매우 많이 떨어졌고, 주변마을과 비교해 세금은 낮게 유지되었다. 게다가, Clearview의 시장은 학교, 도로, 공공서비스등을 향상시키겠다는, 수많은 새 계획들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Clearview 내의 은퇴자들은 이 지역 내의 의사 수가 나라평균보다 훨씬 더 많으므로, 나이가 들수록 더 나은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http://gre-argue.tistory.com/59
[국역] Argue #48
논리적 오류를 몇 개나 잡아냈는가? 나는 솔직히 처음 봤을땐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다. 부동산 광고 치고 이 정도면 오히려 준수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적할 논리적 오류가 이렇게 많다.
- 한결같은 날씨가 꼭 좋은 날씨일까? 한결같게 나쁜 날씨일수도 있다. 매일 폭풍이 불고 주기적으로 태풍이 오는 날씨라면, 은퇴에 나쁠 것이다.
- 설령 한결같이 좋은 날씨이고 주변 환경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은퇴하기에 최고의 장소가 아닐 수 있다. 만약 시골지역이라면 식료품, 옷, 생필품 등의 접근성이 떨어져 생활이 불편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이 아름답지 않고 다소 날씨가 나쁘더라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심 지역이 은퇴에 더 좋을 수 있다.
-주거비가 낮은 것은 좋지만, 향후 가치를 생각하면 집값이 낮은 것이 나쁠 수 있다. 은퇴자의 자산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재무적 안정성과 신용이 떨어질 수 있다.
- 세금이 주변마을보다 낮다는 거지, 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평균보다 높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Clearview의 세금이 낮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주변과 비교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세금의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 의사가 많다고 해도, Clearview 지역 전체에 고루 분포하지 않을 수 있다. 특정 지역에 몰려있다면 전체적으로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 만약 은퇴하는 지역이 의사들이 많이 않은 외곽 지역이라면, 지역 내 의사 수가 많은 것이 은퇴자에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 설령 의사가 고루 분포해있다 하더라도, 의사 수가 많다는 것이 꼭 의료 품질이 높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의료 품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트집을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이러면 본문보다 3배는 더 길어진다. 이것이 GRE Writing의 특징인 비판적 글쓰기다. 집요하게 오류를 잡아내서 최대한 많이 나열하는 것이 고득점 전략이다.
근데 일단 이런 비판적 사고가 머리에 장착이 되면, 이제 모든 글을 보는데 이 사고가 작동한다. 아니 이 글은 이런 결함이 있고, 이 사람은 또 이렇게 멍청한 주장을 하고, 그건 또 그렇게 볼 수 없고 이런 예외가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막상 본인이 글을 쓰는데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별 생각없이 썼던 글이,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화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아뿔싸, 아니 내가 이렇게 멍청한 말을 하다니. 다시 쓰자. 아니 그래도 논리에 구멍이 있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안되잖아. 아이고 미치겠다.
석사, 박사 학위 받는 것을 방어(Defense)라고 한다. 논리적 오류에 대해서 아무리 공격을 해도 다 방어를 해냈다는 의미다. 그래서 논문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글쓰기를 한다. GRE Writing처럼 아무리 집요하게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려 파고들어도, 도저히 깔 틈을 찾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쌓아올리는 것. 한 발자국씩 차근차근 인내하여 쌓아올린 거대한 논리의 탑, 그것이 논문이다.
이것은 험한 학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그만큼 학계는 논리적 오류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단 한 줌의 자비도 없이, 때론 비인간적일 정도로 틀린 건 틀렸다고 똑부러지게 입바른 소리를 끝도 없이 하는 동네다. 그 수많은 주먹질을 다 막아내고도 쓰러지지 않는다면, 마침내 방어에 성공한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을 받으면 어떡하나? 방어를 해봐도 자꾸 뚫리고, 내가 봐도 정말 틀린게 맞다면? 합리적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면 된다. 내가 졌다는 걸 인정하고, 논리가 구멍 난 지점부터 다시 차근차근 논리를 쌓아나가면 된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잘 구축해서 논문을 쓰면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을 잘못할 수도 있지. 권투선수도 경기에서 언제든 질 수 있듯이, 내 글에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 글을 지우거나 고치면 된다. 쿨하게 ㅇㅈ할 건 ㅇㅈ하고 더 훌륭한 글을 쓰면 된다.
이것이 학자로서의 명예고, 품위고, 신성이고, 존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