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인물
11/02/06 13:59(년/월/일 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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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 2010/01/29 |
http://snowcatin.egloos.com/4328448
스티브 잡스가 또 병가를 냈다. 몇 번의 병치레를 했고, 그때마다 살이 빠졌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돌아보는 기사가 올라오더라. 그래서 나도 한번.
http://www.albireo.net/forum/showthread.php?t=14173
iPad 1년, 아니 10년의 역사
http://www.macrumors.com/2011/01/22/insight-into-steve-jobs-product-centric-approach-in-1985-interview/
Insight into Steve Jobs' Product-Centric Approach in 1985 Interview
- 고객의 니즈가 아니라, 나의 니즈를 따른다
생각해보면 스티브 잡스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는 위험을 헷지하는 방법은 단순히, 회사에 현금을 많이 쌓아놓는 정도였다.
그가 애플에 있는 동안 그는 정말 큰 게임을 벌이고, 과감한 베팅을 했다. 그게 또 어떻게 잘 맞아 떨어져 대박이 났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정말 위험한 게임이었고, 얼마든지 질 수도 있는 게임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가 이긴 것은 상당 부분 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애플에서 그를 해고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 한 명에게 매달려서는,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을 상상할 수 없다. 어떻게든 의존성을 줄여보려고, 위험을 줄여보려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은 그저 평범한 컴퓨터 회사일 뿐이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 병가 이후로 발표되는 애플의 정책이나 루머들도 영 시시하고 재미가 없다. 대담함이 없고, 스타성이 없다. 고만고만하다.
- 시장의 흐름을 바꾼다
아이폰이 없었다면 스마트폰은 어땠을까? 아이패드가 없었다면 태블릿PC는 어땠을까? 2001년부터 태블릿PC를 썼고, 2002년부터 PDA폰을 써온 입장에서 말을 하자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없었어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전했을 것이다. 블랙베리도 나름 잘 나갔고, 다들 쿼티를 원했다. MS도 참 보잘것 없는 시장이지만 꾸준히 태블릿PC에 투자했다.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확실히, 시장의 흐름을 바꿨다. 그 전까지 윈도우즈 모바일이나 블랙베리는 전문적이고 비즈니스맨을 위한 기업용이었다면, 아이폰은 확실히 캐주얼한 일반인용이었다. 태블릿PC가 복잡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나 프리젠테이션 용으로 전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아이패드는 그냥 소파에 앉아서 술술 가지고 노는 가정용이었다.
그렇게 시장의 흐름을 바꾼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기업용을 개인용으로, 전문가용을 캐주얼하게 바꿨다. 그런 것을 원하던 IT 너드는 없었다. 스티브 잡스만 원했을 뿐이다.
- 진정한 지름
이런 게 진정한 지름이 아닐까. 내가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원하는 태블릿PC는 이렇게 두껍지도 않고, 배터리도 오래 가고, 손가락으로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고, 구차할 정도로 무거운 윈도우즈 OS를 쓰지도 않고, 작은 화면에 최적화된 어플이 따로 개발되어 있고, 화면도 화사하고, 해상도도 충분히 높고, 캐주얼하고, 우아하고, 값이 싸다.
그런 게 없다고? 그럼 만들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스티브 잡스는 일하지 않았을까.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가지고 싶은 디카는 밤에도 잘 찍히고, 흔들리지도 않고, 너무 크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고, 그냥 생각없이 툭툭 찍어도 잘 나오는 것이다. 다소 화질은 나빠도 상관없지만, 아주 적은 양의 빛에도 최소한 알아볼 수 있는 정도는 찍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디카는 세상에 없다. 생각 같아서는 미군에 군사용으로 쓰는 나이트 비전을 디카로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회사를 차려서 한 10년은 개발을 해야 제품이 나올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다르고, 내가 원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구체적이라면, 회사를 차려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말 진정한 지름이 아닐까.
- 기업가라기보다는 개발자
많은 경영서적에서 스티브 잡스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는 경영자라기보다는 개발자에 가깝다. 제품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하나까지 챙기고, 비트맵이 아니라 윤곽선 글꼴을 쓰도록 하고, 정전식 터치냐 감압식 터치냐, 화면 스크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버튼은 몇 개를 쓰고 어디에 배치할 것이냐,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간섭해서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든다. 이게 어디가 경영이야, 개발이지.
그의 기업가적인 면을 꼽으라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만들려고 회사를 차렸다는 정도?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가지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는데 따르는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했다는 점?
스티브 잡스 이전에 그런 걸 갖고 싶어하던 사람은 없었다. 마치 모차르트 이전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원하는 사람이 없었듯이,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새로운 IT 제품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의 없던 욕망을 만들어냈다. 이래서 회사 이름이 애플인가봐.
- 결론
스티브 잡스는 운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실은 꽤 위험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과감하게 도전한 덕분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IT 제품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IT의 흐름이 꽤 큰 커브를 틀었다.
그리고 이제 애플에서 걱정했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을 걱정해야 한다. 애플은 점점 보통 회사가 되어가고 있고, 지금의 영광을 얼마나 유지할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잘해봤자 플레이 스테이션 이후의 소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스티브 잡스가 없어도 이 바닥은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전하겠지만, 이번에 나온 구글TV와 허니컴이 너무 IT너드 냄새가 나서, 새삼 스티브 잡스의 꼬장꼬장한 우아함이 그리웠다. 잡스님, 다음에 갈 곳은 어디였나요. 이제 다음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