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16/02/06 04:43(년/월/일 시:분)
1.
내가 요즘 공부하는 기계학습은,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에게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맨날 똑같이 하는 패턴이 있는 일을 기계에게 가르치는 거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단순 판단만 기계에게 가르칠 수 있다.
(물론 빅데이터 분석, 자율운전, 바둑 같은 걸 지루하고 반복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많은 컴퓨터 과학인들은 기계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기계가 정답을 낼 수 없는 복잡하고 창의적인 문제는 회사의 인사 정책, 정치적 의사결정이라던가 내 인생의 진로 선택 같은 것이라고 보고 넘어가자)
근데 나도 회사에서 하는 일이 상당부분 그렇지만, 머리를 비우고 단순 반복하는 기계적인 일이 많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잡일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런 거는 다 시스템화 시켜서 자동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산업화한다. 자동화한다. 기계화한다. 시스템화한다. 생산성을 높인다. 다 같은 얘기다. 사람 손을 안 타도 자동으로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면, 단순 반복 작업을 해서 먹고 살던 사람들은 어떡하나? 10명이 하던 일을 7명이 할 수 있게 되면, 나머지 3명은 짤리는 것 아닌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필요하지 않고, 일부만 생존이 가능한 미래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정보화시대는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명 아닌가? 정보화시대에 사람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지금 열심히 하는 자동화 작업이 사실은 우리 중 누군가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가?
2.
그런데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성, 즉 결과물의 가치로 환산해서 보다보면 사람이 사라져버린다. 추상화를 하다보니 자잘한 것들이 다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마치 인삼을 거칠게 다듬다보니 잔뿌리들을 떨어버리는 것 같다.
KBS1에서 중국 인삼 농장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는 인삼을 트랙터로 수확하더라. 한국은 잔뿌리가 상하지 않게 일일이 사람 손으로 소중하게 수확할 때, 중국은 잔뿌리고 뭐고 무식하게 기계로 다 밀어버렸다. 심지어는 남은 잔뿌리도 마치 무 잔뿌리 자르듯이 다 다듬어 버렸다.
인삼의 사포닌이라던가 하는 유효성분은 잔뿌리에 더 많았다. 그러니까 잔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다루어야 더 좋은 인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잔뿌리를 걷어내도, 몸통을 훨씬 더 싸게 사서 많이 먹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유효성분이 더 많을 것이다.
중국 인삼은 한국 인삼보다 훨씬 싸다. 기후도 좋아서 알도 굵고, 자동화해서 값도 싸다. 잔뿌리가 없지만 같은 가격에 훨씬 많이 먹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것 아닌가?
3.
나는 돈이라던가, 의식주라던가, 환경이라던가 하는 물질적인 자원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인간 세상이 모두 물질에 기반한다는 유물론을 믿기에는 뭔가가 빠진 것 같다. 마치 잔뿌리를 다 쳐낸 중국 인삼을 먹는 것 같다.
나는 인간에게 신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이상을 상회할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나의 육체적/정신적 재능이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우리 운명의 틀도 어느 정도 정해질 것이다. 거기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테두리가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 운명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굳이 그 울타리를 넘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 그러다 대부분은 뻔히 보이듯 실패하겠지만, 어쩌다 성공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인생은 이럴 것이다.
인생 = 운명 * (1 + 알파)
1. 운명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운명과 같을 것이다.
2. 운명을 벗어나는 사람이라면, 운명보다 나쁘거나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수가 없어서 운명의 70%밖에 못 사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운명의 130%를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재수라는 말을 쓰고 싶지가 않다. 행운이나 불행이라고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정도는 랜덤이겠지만, 랜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것을 노력, 열정, 패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신성, 영혼, 선의라고 부르고 싶다. 나의 인생을 고치고 싶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를 더 훌륭하게 바꾸고 싶은 거대하고 신성한 선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 예를 들면 기독교의 부흥이라던가, 산업혁명이라던가, 세계대전 때에도 나는 물질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거대한 선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위인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겠고 잊혀진 사람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 문명이 여기까지 오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운명의 알파값이 단순 랜덤이라면, 결국 인생의 총합도 운명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알파값의 총 합이 0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운명을 고치려는 사람들은 크게 보면 운명을 상회하는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한다.
4.
나는 기계가 인간과 별개가 아니라, 인간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뭔 얘기냐 하면...
도구를 생각해보자. 내가 망치를 써서 못질을 한다고 하면, 망치가 나의 손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매일 망치를 아주 잘 쓰는 목수라고 하면, 나의 자아는 내 몸을 넘어서 내 망치까지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자아는 신체를 넘어서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내가 컴퓨터를 아주 잘 쓰고, 매일 컴퓨터로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의 자아가 컴퓨터까지 포괄할 것이다. 내가 작도닷넷을 열심히 보살피다보면, 어느새 작도닷넷도 나의 일부가 된다.
즉 기계는, 시스템은 인간의 확장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계는 주인이 있다.
만약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기계가 있다면? 세월에 풍파에 낡고 부패하여 그 생명력을 잃어갈 것이다. 사람은 어딘가 허술한 면이 꼭 있기 마련이고, 그걸 지속적으로 보살피지 않으면 병에 걸리거나 죽고 만다. 그것은 기계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생각지 못한 예외가 생기고, 에러가 생기고 버그가 생겨서 동작을 멈출 것이다.
스스로 고치는 기계,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기계, 인간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기계, 즉 의지를 가진 강인공지능(Strong AI)에 대한 연구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만약 강인공지능이 성과를 거둔다면 나의 생각이 바뀔 여지는 있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기계를 인간의 부속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바이러스, 블록체인 같은 경우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스스로 행동하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작도닷넷 같은 경우도 인터넷에 공개하니 악성 공격 또는 자동 크롤링이 실제 사람이 보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렇게 험한 세상이지만 이런 스팸성/악성 트래픽을 차단하는 보안 솔루션이 계속 등장하고, 이를 적극 구매하며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인터넷은 아직도 쓸만하다. 즉 악의를 가지고 스스로 생명을 가지며 스스로를 복제하며 퍼트리는 기계도 있지만, 가끔씩 예외적으로 사람을 이길 뿐 대부분 지고 말아, 세균이 가득한 우리 지구의 공기처럼 지저분한 물질적 환경 수준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5.
기계의 잘못은 사람의 잘못이다. 회사의 최종 책임을 사장이나 경영진이 지듯이, 기계나 시스템의 책임도 최종적으로는 그 기계를 시키고 관리하는 사람이 질 것이다.
기계의 탓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람이 경제적으로 소외된다면, 그것이 기계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설령 물질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으로 간다 하더라도, 그런 인간소외를 막기 위한 책임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스렌지는 불이 날 수도 있고, 폭발 사고도 날 수 있다. 하지만 위험보다 편익이 크기 때문에 안전한 범위 내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가스렌지도 이 정도인데, 기계화 산업화에 따른 위험은 훨씬 클 것이고, 이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수칙, 제도 등도 훨씬 복잡할 것이다.
우리가 그 위험한 원자력도 사용하고 있는데, 기계화 산업화도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나는 기대한다. 물론 원자력보다 정보화, 기계화, 산업화가 훨씬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력이 그랬듯 정보화시대도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에는 인간 소외 등의 손해보다 편익이 큰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인간의 신성으로 거대한 선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간절히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