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f Dr.Gothick
10/05/23 02:26(년/월/일 시:분)
- 2001년
일단 구루구루 이야기하기 전에 당시 P2P 불법 공유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2001년이면 냅스터가 패소하고 음악으로는 오디오 갤럭시를 쓰던 시절입니다. 웹하드 같은 것이 존재했을지 모르겠으나 거의 안 쓰던 시절. 이때는 사람들이 야동을 받기 위해서 소리바다를 쓰기까지 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니까 하두리 검색하면 [하두리] 예쁜 고딩.MP3같이 확장자 바꾼 파일들을 공유하던 시절이란 뜻입니다. 몇몇 사람은 아예 소리바다 채팅방에 "겜, 야동 공유해요"식으로 채팅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버디버디 등으로 주고받는 식. 근데 소리바다에서 방관리를 나름대로 신경써서 했기 때문에, 공유방 만들면 ID정지 먹습니다.
이때 나타난 구루구루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각자 하드에 공유 폴더를 만들어서 채팅방 등에서 만난 상대방과 자료를 공유하는 겁니다. 겜공유방 만들어도 아이디 정지 안 먹고, 버디버디같은 다른 프로그램을 켤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공유 폴더에 접속할 때 공지를 띄울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자료와 가진 자료를 쉽게 공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놓고 불법 자료 공유를 촉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 먹튀
저는 구루구루를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썼습니다. PS CD이미지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보니까 PS CD이미지 구하는 사람이 꽤 많더군요. 저는 주로 쿠소계열의 게임을 찾았기 때문에 상당히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겨우겨우 조금씩 모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중 하나가 먹튀.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게임 교환를 하자고 해서 서로서로 파일을 보내주는 것인데 B라는 사람이 마침 인터넷 문제로 업로드 속도와 다운 로드 속도가 차이 많이 났던 겁니다. 때문에 A는 자신이 받을 게임을 다 받았는데, B는 게임을 아직 다 못 받은 상황. 이때 A가 전송 끊고 쪽지 차단하고 잠수해버리는 일이 꽤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B는 분노해서 자신 공유폴더 공지의 사기꾼 목록에 A를 올리게 되는 겁니다. 어차피 불법 자료 공유하는 마당에, 얌체같은 행동 한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불러주는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웹하드 자료 사기꾼처럼 아무 야동이나 압축한 다음에 최신 게임제목 붙여서 교환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채팅방
구루구루에는 채팅방이 있습니다. 이게 처음에는 말 그대로 자료 공유를 위한 임시적 채팅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모이는 사람만 모이다 보니까 거의 IRC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이 채팅방이라는 것이 사람이 모두 나가면 당연히 깨지는 것인데, 매일 구루구루 켜놓고 그 채팅방에 죽치는 사람이 있으니까 한번 열어놓은 채팅방이 한달 동안 깨지지도 않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구루구루를 쓰다 보니 저도 모 PS게임 방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유저도 있고, 20대 유저도 있고 10대 유저도 있었습니다. 그 방의 방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분께서는 제가 매일 쓰레기 게임만 찾는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에 PS 게임 이미지를 70개인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50개 정도가 쿠소계열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연 채팅방은 맨 위로 가는데, 맨 위에 있는 채팅방은 당연히 사람들이 더 쉽게 많이 오게 됩니다. 때문에 채팅방이 위에 있을수록 좋은 겁니다. IRC화 된 채팅방은 그래서 각각의 방끼리 누가 더 오래 버텨서 맨위로 가는가를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주 가끔 있는 점검으로 인한 채팅방 리셋이라도 생기면 1번 방 먹으려고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있는 방은 대부분 2등을 먹는 방이었습니다. 거기 많이 다니신 분이라면 아마 그 방이 뭔지 알 정도로 나름대로 유명한 방이었습니다. 이 방 사람들 보면 일단 저부터 항상 구루구루와 컴퓨터를 24시간 켜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등 방을 못 먹습니다.
왜냐하면 1등 방은 저희 방과 달리 사람들이 워낙 많은데다가, 방지킴이라고 해서 죽치는 임무까지 해주는 사람을 따로 뽑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여기는 이기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저희 방 사람들은 모여서 어떻게 하면 저 방을 빼앗을 수 있을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 웹 링크로 you are a idiot같은 다운 유도 페이지 보게 하기. 2. 핑공격 3. 방 지킴으로 잠입해서 방 훔치기.
제가 제안한 방법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 세가지 방법 모두 써서 방을 빼앗았습니다. 한명 한명 쓰러트리고 맨 마지막에 보스가 "저 컴퓨터 재부팅하고 오니까 방 지켜주세요."하고 나갔다 오는 사이에 그 방은 저희 방이 된 겁니다. 지금 이렇게 쓰니까 간단한데 이게 3일인가 걸렸을 겁니다. 리니지 공성전보다 더 힘겨운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짓을 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구루구루는 망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나귀 같은 P2P가 활성화되고, 구루메신저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에 유저들이 하나씩 나가던 시절입니다. 결국 1등 방을 먹어봤자 사람들 딱히 더 오는 것도 아니고, 이 채팅방이나 저 채팅방이나 오는 사람 다 정해져있습니다. 그냥 무의미한 1등 방 먹기 게임입니다.
그러니까 그 방 사람들이 와서 방 달라고 애원하고 욕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모두 비웃으면서 강퇴로 쫓아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채팅방 리셋 생겼고 1등방 다시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등 방 빼앗기를 계속 했습니다. 나중엔 저희 방에도 3등 방의 방 빼앗기 스파이가 들어오는 등 갈수록 치열해졌습니다.
불법 파일 공유하라고 만들어 놓은 채팅방이 IRC처럼 변해고, 나중엔 그걸로 공선전을 하면서 놀았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컴퓨터 켜놓고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하는 극도로 미련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유료니 개편이니 해서 유저 다들 나갔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이후에 다시 무료화 된다고 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상황.
구루구루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남자들이 많이 모이면, 그 어떤 것도 패싸움으로 이용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전쟁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배웠습니다.
Excf.com의 Dr.Gothick님의 글을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