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9/11/10 01:02(년/월/일 시:분)
200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었다.
일본에서도 특집을 해줬는데, 몰랐던 게 있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사실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생긴 거라고 하네. ㅋㅋ
그 전까지는 서독 사람들만 무비자로 바로 동독 여행이 가능했고,
동독 사람들은 서독 여행을 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했고, 이것도 한 일주일 정도는 걸렸다.
그런데 이 비자를 지체없이 바로 발급해주기로 한 것. (허가제->등록제)
즉 무비자도 아니었고, 단지 비자 발급 시간을 단축한 것 뿐이었다.
이것들 동독 대변인이 "서독 여행이 지금 즉시부터 자유다"라고 발표했고,
이를 들은 동독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에 떼로 달려들어 부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예상치 못한 사태를 동독이 유혈 진압하지 않고 뒷짐만 진 것으로 보아
동독 관리들의 암묵적인 합의도 있었다고 봐야겠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23&aid=0002092603
베를린 장벽 붕괴는 말실수에서 시작됐다
1989년 동독정부 회견서 '여행자유화' 즉흥적 답변
'국경 개방'으로 알려져… 인파 몰려들자 발포 못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20&aid=0002090487&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스키가 11월 9일 장벽이 무너진 날 기자회견에서 동독이 국경을 즉각 개방한다고 말한 것은 역사적 실수였나.
“SED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분명 큰 실수를 저질렀다. 왜냐하면 새로운 여행규칙은 사실 그 다음 날 발표될 예정이었는데 그 내용인즉 동독 주민은 우선 신청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에 해외로 나가도록 허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보스키 발표 때문에 동독 주민은 즉각 국경검문소로 몰려가 국경을 통과해버렸다. 동독 주민들이 주도권을 쥐고 성공으로 이끌었다.”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유혈사태가 시작됐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국경 경비대원 중 한 명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유혈 대학살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국경경비대는 아주 이성적으로 행동했고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http://en.wikipedia.org/wiki/Berlin_Wall#The_F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