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4/10/05 22:03(년/월/일 시:분)
게이는 본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다보니 자기가 게이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게이가 되는데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수도 있고, 환경적인 요인이 있을수도 있는데, 이런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우연찮게 딱 맞아 떨어졌을때 게이가 되는 것 같다.
게이라고 편하게 얘기했지만, 동성애자를 포함한 이상성애자들, LGBT까지 크게 묶어서 게이라고 치면 전체인구의 3% ~ 10% 정도 된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10%까지는 안 나오지만, 솔직히 자기를 게이라고 답하기 어려운 문화를 감안하고, 또 사실은 게이지만 게이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10%까지 갈 것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sexual_orientation
It is widely believed amongst population surveyors that one in every ten[citation needed] individuals fit under the LGBT category.
그런데 솔직히 나는 실제로 게이를 만난 일이 거의 없다. 3 ~ 10% 면 적어도 내 친구나 지인 중에 3 ~ 10%도 게이여야 하는데, 그 비슷한 수준도 안 된다. 게이는 다들 어디 갔나? 게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는 게이가 원래 없는 걸까? 그럴리가.
2011년 미국 어학연수 시절, 대학교에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총장과의 대화를 야외 스크린으로 중계해주길래 신기해서 봤는데.
당시 이란은 (지금도 그렇지만) 핵무기를 개발하고, 폐쇠적인 대외 정책으로 미국 등의 서방 국가의 큰 반발을 사고 있었다. 하지만 이란 대통령이 깔끔한 서양식 단발 머리에 서양식 양복을 입고, 미국에 직접 찾아가 대화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도 보여서 다들 주목했는데.
대학 총장이 이란 대통령에게, 이란 내에서 게이 인권에 대해 물었다. 이슬람 문화권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란도 게이에 대한 탄압이 심하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이란 대통령이 이렇게 답했다.
"이란에는 게이 문제가 아예 없다. 왜냐하면 게이가 없기 때문이다. 게이는 미국 등의 서양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화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게이가 없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많은 학생들이 단념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내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게이가 아예 없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이 사람과는 대화가 안되겠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일단 우리, 게이는 있다고 인정하자. 안 그러면 이란 대통령처럼 아예 대화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3~10%나 되는지는 일단 미뤄두고, 그만큼 되던 안되던, 실제로 동성에 성적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자 그러면, 왜 게이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걸까? 왜 게이가 안 보이는 걸까?
게이는 숨어있다.
게이임이 밝혀지면 불리하다.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 취향이 이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성적 취향일 뿐인데,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병균을 퍼트리는 것도 아닌데, 조금 괴팍한 사람일 뿐인데 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단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까 감춘다. 자신의 본성을 참는다. 아닌 척 하고 살아야 한다. 그냥 열심히 일하고 살기에도 바쁜 와중에, 게이인걸 들키지 않으려고 자기 억압을 하고 살아야 한다. 얼마나 피곤하고,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가.
이렇게 게이들이 게이가 아닌 척 하고 살다보니, 게이가 보이지 않아 게이가 어떤지를 잘 모른다. 게이가 주변에 많이 보여야 게이가 어떤지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게이에 대한 편견이던 뭐건간에 자꾸 쌓여갈텐데, 아예 보이질 않으니 시작조차 할 수가 없다.
문제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숨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볼때야 당연히 게이임을 드러내는 편이 이익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그 드러낸 게이는 차별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자꾸 숨기게 되는 것이다.
홍석천처럼 얼굴을 까고 대중에 얼굴을 드러내면, 홍석천도 그랬듯이 당장의 밥벌이가 끊긴다. 생계를 잇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커밍아웃을 막는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꽁꽁 숨어있으면 게이의 발전이 없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게 내가 되기는 싫다, 그런 마음이 있다. 개인적 이해와 사회적 이해가 충돌한다.
누군가는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 게이 인권운동 전선의 제일 앞에 서서 "돌격 앞으로"를 외칠 누군가가 있어야, 나머지 사람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따라갈 것이다. 그런 희생, 헌신을 통해 개인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위대함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게이를 많이 보고 싶다. 게이가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TV에도 보이고, 친구들 중에도 보이고, 지인 중에도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